금요일인 1974년 5월 17일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 경기도 평택군 오성면 안중리에서 동쪽 평택읍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오성면 서쪽 현덕면에서 토끼를 사육하는 33세 남성 오종상은 옆자리 여고생들의 대화를 듣게 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2007년 하반기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학생 중 하나가 "그런 행사에 나가는 게 처음이라 떨린다"라고 말했다. 오종상은 "어디에 가느냐?"고 물어봤다. 학생들이 가는 곳은 평택교육청이 주관하는 웅변대회장이었다.
오종상이 대회 주제가 뭐냐고 묻자, 안일여자종합고등학교(지금의 경기물류고등학교) 3학년 김아무개양은 '반공·근면·저축·수출증대'라고 답했다. 오종상의 귀를 끌어당긴 것은 '저축'이다. 그는 '박영복 은행사기 사건'을 떠올렸다. "박영복 은행사기 사건에서와 같은 사기꾼들을 위해 하는 저축은 필요 없다"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박영복 사건은 그해 2월부터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1974년 10대 뉴스를 정리한 12월 27일자 <동아일보> 4면은 육영수 저격사건, 긴급조치 선포, 민청학련사건 등과 더불어 일곱 번째로 박영복 사건을 선정했다.
신문은 "박영복은 74억 원을 8개 은행에서 부정대출 받은 것이 밝혀져 금융부정의 단면을 보여주었다"라며 "이 사건은 대검 특별수사부가 2월 1일 서울 금록통상 대표 박영복(39)과 김용환 상무(54)가 대구 교외에 있는 남의 땅을 서류 위조하여 담보로 제공, 중소기업은행에서 7억 원을 부정대출 받은 혐의로 구속되면서 드러나"라고 설명한다.
박영복이 구속된 지 15일 뒤에 정부는 짜장면값을 80원에서 110원으로 올렸다(2월 16일 자 <매일경제>. 이를 감안하면, 위의 74억 원에 70 정도를 곱해야 현재의 가치를 대략 가늠할 수 있다. "박영복을 모르는 부장검사가 없다"라고 할 정도로 그의 정·관계 네트워크가 두터웠기에 그런 거액을 8개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었다(4월 26일 자 <동아일보>).
오종상은 아무리 열심히 예금해 봤자 박영복 같은 사기꾼들에게만 좋은 일이 되는 서글픈 현실을 지적했다. "샐러리맨들이 적은 월급에서 한푼 두푼 모아 저축을 하면 그 돈을 정부에서 잘 이용하여 산업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좋겠지만, 어떤 특정 개인이 대출을 받아 소비해 버리는데, 그런 저축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라고 말했다.
말 한마디 했다가 징역 3년옆자리 학생인 김양은 오종상의 발언 중에 '정부'가 언급되는 것을 지나쳐 듣지 않았다. 그는 33년 뒤인 2007년 7월 21일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때 "그때만 해도 수업 시간에 반정부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을 빨갱이·간첩이라고 배웠어요"라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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