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면에서 민주적'이었던 사람, 김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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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청련은 1983년 9월에 창립했는데, 김선택은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운동권이 극소수였던 서강대 출신 김선택은 참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1983년 말쯤 선택은 장준영으로부터 처음으로 민청련 참여를 권유받았다.

민청련 기관지 <민주화의 길> 편집위원이 되다

장준영은 성균관대 내부 논의를 거쳐 민청련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는데 서강대는 어떻게 할 건지 선택에게 물었다. 선택은 서강대는 형편상 조직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신이 개인적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민청련 기관지 '민주화의 길(약칭 민길)' 편집진에 들어갔다.

민길 1호가 처음 발간된 것은 1984년 1월쯤이었는데, 선택이 민길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1984년 7월 민길 4호 발간을 준비하던 때였다. 당시 민길은 진재학(서울대 77학번)이 팀장이었고, 백현기(국민대 74학번)가 팀원으로 있었고, 김희상(성균관대 73학번)이 중앙위원회 지도위원으로 나와 있었다. 선택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들과 인연을 이어갔다. 선택은 주로 경제관계 정세분석을 담당했다. 선택은 민길팀에서 1985년 말까지, 대략 13호 발행 때까지 일했다.

1985년 6월 김병곤 상임위원장이 구속되고, 9월 초에 김근태 의장과 이을호 상임위 부위원장이 구속되면서 민청련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10월에 들어서면서 최민화 부의장 등 간부 5명이 추가로 구속되고, 김희택, 박우섭 등 간부들 모두에게 수배령이 떨어져 민청련은 공개적인 활동이 중단되고, 지하로 숨어들게 되었다. 민길도 사실상 발행 중단이 되었다.

활동 중단으로 답답하게 지내던 중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청련에 대한 탄압이 풀리고 9월에 총회를 열어 김희택 의장을 중심으로 공개활동이 복원되었다. 민청련은 12월 대통령선거 때까지 지역지부 건설과 선거국면의 정치투쟁이라는 내외 양면에서 적극적인 황동을 펼쳤는데, 선택은 이때 공개적인 직함을 맡지는 않았지만 다시 회원으로서 민청련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다.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가 야권의 분열로 노태우의 당선으로 끝나자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던 민통련이 혼란에 빠졌다. 지도부가 총사퇴했고, 산하조직도 분열되었으며, 실무진도 대거 그만두어 공백이 생겼다. 민청련도 김희택 의장 등 의장단이 총사퇴하고 2월에 총회를 열어 김성환 의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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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 천생 배필 권미혁

이때 선택은 민청련보다 상위의 연합단체인 민통련을 정상화하는 일을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민통련의 중간지도부라고 할 수 있는 김근태, 이부영, 장기표 등은 아직 감옥에 있었고, 정책실장 대행 역할을 하던 김병곤은 구로구청사건으로 구속된 상태였다. 이창복 의장만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이때 민청련의 '삼택'이 나섰다. 김희택이 민통련 사무처장으로, 김선택이 정책실 차장으로, 권형택이 사무차장으로 이창복 의장을 모시고 민통련 재건에 나섰다. 김선택은 또한 통일운동에 몰두하고 있던 문익환 목사를 모시고 민통련 통일위원회를 꾸렸다. 통일위원회에는 문 목사 이외에도 김낙중, 노중선, 전창일 선생 등이 있었다.

그러다 1988년에 김근태, 이부영, 장기표가 출소하면서 새로운 연하단체 조직 논의가 일어나 결국 1989년 1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이 창립했다. 선택은 민통련의 맥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새로운 연합체로 연결되는 다리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 셈이었다.

1988년 10월 선택이 민통련에 근무할 때였다. 민청련 후배 이정심이 선택을 찾아와 물었다. "형 장가갈 거야?" "야! 그러지 않아도 집에서 장가가라고 난리야." "알았어요." 그러고나서 얼마 안 있어 11월 3일 이정심이 성대 앞 장미다방에서 권미혁과 자리를 마련했다. 미혁도 민청련 여성부 활동을 했으니 전부터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으나 직접 대면하기는 처음이었다.

당시 미혁은 이화여대 77학번으로 선택보다 4살 아래였고, 민청련 여성부를 나와 여성민우회에서 상근으로 여성운동을 하고 있었다. 첫날은 술 한 잔 하고 헤어졌고, 그 후에 선택이 한 두 번 더 만나보니 '말이 통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두 번째 만나는 날 선택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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