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이 직접 쓴 12·3 그날, 나를 울린 그 청년 그 응원봉

<[12·3 비상계엄 1년 ①] 이 대통령이 직접 쓴 12·3 그날, 피가 마르는 국회 진입 작전>(https://omn.kr/2g92a)에서 이어집니다.

가슴이 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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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전등화가 계속되었다. 무장한 계엄군은 헬기를 타고 국회의사당 운동장에 집결했다. 국회 정문 앞쪽에 몰려든 시민들은 "비상계엄 철회하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정을 넘겨 12월 4일로 날짜가 바뀌었다. 국회의사당 상황은 더 긴박해졌다. 본회의장 밖에서는 무장한 계엄군이 밀고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금세라도 본회의장 안으로 쳐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소란한 소리가 긴장감을 부추겼다.

의결 정족수를 이미 훌쩍 넘겼는데도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니 가슴이 타들어갔다. 나중에 당시 상황을 복기하면서,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물어봤다. '왜 그렇게 의결이 늦어졌느냐. 우리는 가슴이 타서 죽는 줄 알았다'고 했더니, 일리 있는 답변을 하셨다. 아주 위험하고 급박한 상황인 것은 본인도 잘 알고 있었지만, '비상계엄 해제 의결 절차에 일체의 위반 사항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절차를 정말 악착같이 챙겼던 것이다.

게다가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가 의도적으로 시간을 끄는 지연 작전을 썼다. 우원식 의장은 그에게 12월 4일 오전 1시 30분으로 의결 시간을 통보했으나 이마저도 미뤄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결국 오전 1시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되었다. 애초 통보보다 30분가량 당겨 의결을 진행한 것이다. 전날인 12월 3일 오후 10시 28분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약 2시간 30분 만의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우원식 의장의 판단이 옳았다. 법률가인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되자 법전을 뒤졌다고 하지 않나. 절차상 허점이 있었다면 분명히 꼬투리를 잡아서 물고 늘어졌을 것이다. 나중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의결 절차를 밟는 데 하루이틀 정도 걸리지 않겠냐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이렇게 빨리 처리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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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의 가결을 확인하고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데 안규백 민주당 의원이 다가와 내게 말했다.

"대표님은 계엄군의 체포 대상입니다. 최우선 체포 대상 세 명 중 한 명입니다."

어떻게 확인했느냐고 물었더니 계엄군과 연결된 곳으로부터 직접 받은 제보라고 했다. 비상계엄을 확인한 순간부터 내가 체포 대상일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안 의원으로부터 실제로 들으니 다시 긴장이 되었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비상계엄이 법적으로 최종 해제되기까지 정말 기적 같은 우연들의 연속이었다. 나중에 비상계엄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나고, 당시에는 몰랐던 많은 사실들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알게 된 기적 같은 우연들은 지금 생각해 봐도 〈애국가〉 가사에도 있듯이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였다. 그건 주님의 은총이었고, 부처님의 가피였다. 윤 대통령과 그 최측근들은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비상계엄과 내란을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런데 그 계획들이 모두 어긋났다. 그중 하나라도 들어맞았더라면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만약에 비상계엄이 단시간에 합법적으로 제압되지 않고 포고령대로 시행되었다면? 그래서 장갑차에 기관총으로 무장한 계엄군들이 시내를 활보했다면?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고개를 숙인 채 숨죽이며 지낼 국민들이 아니다. 분명히 불의에 맞서 저항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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