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다. 15년 동안 견딘 것은 엄마이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자식을 포기할 수 없지 않느냐. 북쪽에 두고 온 딸을 만나고 싶다."
"문재인정부 때 북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가 무너졌다. 지금 새 정부에서 희망이 커졌는데, 만약에 무너지면 더 일어서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희망을 가진다."
2011년 중개인(브로커)에 속아 입국해 '남한에 갇힌 평양 아줌마' 김련희(56)씨가 한 말이다. 김씨는 17일 저녁 경남 창원노동회관에서 다큐 <그림자꽃> 상영 이후, 이춘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 행사는 경남자주연합, 민주노총 경남본부, 경남평화너머, 열린사회희망연대, 경남자주통일평화연대, 경남진보연합, 전농 부경연맹이 마련했다.
이춘 작가가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김씨는 "힘들다. 주저 앉고 싶을 때도 있다"라면서 북쪽에 있는 딸을 생각하며 버티고 있다고 했다. 17살에 헤어졌던 딸은 현재 32살이 됐다. 결혼할 시기라고 하자 김씨는 딸이 이미 결혼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남쪽에 살면서 가장 충격적인 게 뭐냐"는 물음에 김씨는 남과 북의 문화 차이를 설명했다.
"북쪽에서는 어릴 때부터 남쪽은 가족형제라고 배웠다. 그런데 남쪽은 국회 청문회 때마다 주적이 누구냐는 질문에 북한이라는 대답을 해야 통과시켜 주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주적이냐.
임수경씨가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석했다. 세계 언론들이 밀착 취재를 했다. 북쪽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임수경씨가 '남쪽 학교에서는 북한 사람들을 그려놓고 얼굴을 빨갛게 하며 짐승처럼 여긴다'고 했다. 그 말을 텔레비전으로 들었던 북쪽 7살 초등학생이 선생한테 물었다. 우리는 가족형제라고 배웠는데 왜 남조선은 우리를 짐승처럼 말하느냐. 이해를 못하겠다라고 했다. 백두산에서 판문점까지 평화대행진을 했는데, 그 학생이 임수경씨를 찾아갔다. 그때 즉흥 시를 지어 읽었는데 제목이 '우리 함께 사진 찍자요'였다. 당시 그 사가 북과 세계에 많이 알려졌는데 남쪽에서는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탈북여성들이 방송에 나와서 평양에서는 석탄 더미에서 아이를 낳고, 길바닥에서 유리조각으로 탯줄을 끊고 한다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이 그대로 남쪽에 통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현 시대에도 통한다고 하니 충격이다. 북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남쪽에 공부도 많이 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상식이 몽땅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충격이다. 남쪽은 북에 대해 너무 모른다."
이재명 정부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큐를 감상하면서 울었다는 한 참가자가 평양에서 중국으로 가게 된 사연을 묻자 김련희씨는 북쪽의 여권 발급 상황을 설명했다.
"할아버지가 양세봉 선생과 같이 독립운동을 하셨고, 아버지 형제 셋이 중국에 사셨다. 사촌 오빠언니 일곱이 중국 조선족으로 사셨다. 병을 고치기 위해 중국으로 갔다. 남쪽은 여권이 금방 나온다지만 북쪽은 그렇지 않고 두 달 정도 걸린다. 해외에 친척이 살아 방문하기 위해 여권 신청을 한다면, 해외 친적의 동의서를 밟아야 하기에 그 절차가 2개월 정도 걸린다. 북쪽에서는 해외에 한 명이 나가도 어디에 왜 가는지 확인을 해서 내보낸다. 해외 방문 목적이 정확해야 여권이 나온다. 저도 여권을 발급받아서 중국으로 치료를 위해 갔던 것이다."
문재인정부 때 상황이 좋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김씨는 "2018년 여권을 내주었다. 그런데 일주일만에 출국금지를 하더라. 여권을 안 주는 것만 못하더라.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도 희망을 가졌다가 무너졌다. 지금도 희망을 갖는 게 두렵다"라고 말했다.
"윤석열정부 때는 희망을 갖지 않았다"라고 한 그는 "이재명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희망을 가진다. 통일부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만났고 식사도 했다. 차관급 인사도 만났다. 통일부 관계자를 만나면 이재명 대통령도 제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통일부 장관도 문제 해결 의지가 있다고 한다"라며 "그런데 희망을 크게 가졌다가 무너지면 다시 일어설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희망을 가진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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