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70시간 가까이 고강도 새벽배송…법적 보호망도 벗어나

지난 10일 제주에서 새벽배송을 하다 졸음운전 추정 사고로 숨진 쿠팡 택배노동자 30대 남성 A씨. 사고 직전까지 A씨는 법정 최대 근로시간인 주 52시간을 훌쩍 넘긴 70시간 가까이 새벽배송 일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A씨는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이라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다.   야간근로 기준 '주 83시간' 고강도 노동  전국택배노동조합 제주지부(이하 택배노조)는 12일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제주시 한 장례식장 앞에서 '쿠팡 새벽배송 택배노동자 자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택배노조는 고인이 사용한 휴대전화 쿠팡 애플리케이션을 분석하고 고인과 함께 일한 동료기사와 유족을 상대로 조사했다.   조사 결과 숨진 A씨는 주6일에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30분까지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평균 11시간 30분 배송 일을 했다. 주6일로 노동시간을 계산하면 69시간이다. 여기에다 A씨가 주로 야간시간대 일을 했기 때문에 법정 야간근로시간 기준으로는 주 83.4시간 일했다.   법정 최대 근로시간인 주 52시간을 훌쩍 넘는 70시간 가까이 새벽배송 일을 하고 있었지만, 법적 보호는 받지 못했다. 근로기준법망에서 벗어난 '특수고용직'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A씨는 쿠팡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와 계약한 대리점 소속 기사라 간접고용직 신분이었다.   A씨는 또 제주시 오등동 쿠팡 1캠프(물류터미널) 소속 기사로 주로 노형동 월랑초등학교 인근 구역 배송을 담당했다. 특히 쿠팡 1캠프에서 물건을 직접 분류하고 탑차에 싣고 나와서 7㎞ 떨어진 노형동까지 가서 배송 일을 했다. 이 과정을 하루 두 차례 반복하는 다회전 배송을 한 것이다.   사고 직전에는 아버지 장례까지 치렀다. A씨는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사흘간 장례를 치른 뒤 8일 하루를 쉬고 첫 출근한 9일 오후 7시부터 일을 했다. 10일 새벽배송하다 사고로 숨졌다. 이 과정에서 대리점 관계자로부터 출근을 부탁하는 내용의 연락을 받기도 했다고 택배노조는 설명했다.   송경남 전국택배노조 제주지부장은 "고인은 하루 2차 반복배송과 하루 평균 300여 개 이상 되는 무거운 택배를 취급하는 육체적 강도가 높은 노동을 하고 있었다. 특히 아버지 3일상까지 치르고 하루 뒤 곧바로 출근해 사망사고 직전까지 심각한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했다.   "새벽배송 기사들 중 최악의 노동조건"  특히 A씨는 과로로 숨진 다른 택배기사들보다 훨씬 높은 고강도 노동을 했다. 지난해 5월 쿠팡기사 고 정슬기 씨가 주 73시간 야간근무를 하다 과로로 숨져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마찬가지로 산재로 인정받은 지난해 7월 숨진 50대 기사는 주 62시간 일했다. A씨는 '주 83.4시간'이다.   강민욱 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조 쿠팡택배본부 준비위원장은 "산업재해로 인정된 다른 쿠팡기사 과로사 사례들을 비교해서 봤을 때 숨진 제주 쿠팡 택배기사의 경우 쿠팡 새벽배송 기사들 중에서도 가장 최악에 속하는 노동 조건 속에서 일을 하다 안타깝게도 숨졌다"고 밝혔다.   택배노조가 직접 A씨의 근무시간과 배달한 물량 등을 기록해 점수를 매기는 쿠팡 배송기사 전용 앱을 확인한 결과 A씨는 사망 당시 5점 만점에 가까운 4.94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배당된 택배물량을 대부분 정해진 시간 내 대부분 배송하고, 출근시간이 많아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8살, 6살 두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주6일 70시간 가까이 새벽배송 일을 해오던 30대 가장의 죽음 앞에서 쿠팡이 A씨에게 매긴 만점에 가까운 점수는 '죽음의 숫자'로 다가오고 있다.   A씨는 앞서 지난 10일 오전 2시 16분쯤 제주시 오라2동 사거리에서 1톤 탑차를 몰다 통신주를 들이받았다. 크게 다친 A씨는 도내 한 종합병원으로 이송됐지만 12시간 만에 숨졌다. 경찰은 A씨가 음주상태도 아니었고, 새벽시간 배송 일을 했기 때문에 졸음운전 사고로 추정하고 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이날 A씨 빈소를 찾아 분향한 뒤 기자들과 만나 "부친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에서 휴식을 취하지도 못하고 노동현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점검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