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제이홉, 보이는 노래·들리는 춤…‘판도라의 상자’ 희망 여기 있네

  • 뉴시스(신문)
  • 입력 2025년 3월 3일 00시 02분


춤꾼 출신 래퍼, ‘공연 서사화’ 위력 보여줘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서 첫 솔로 월드투어 포문
3일간 3만7500명 운집

ⓒ뉴시스
진지한 정체성, 명민한 오락성.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 제이홉(정호석)은 스트리트 댄스를 기반으로 삼은 춤꾼 출신 래퍼가 공연의 서사화에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본인의 뿌리를 잊지 않는 진정성이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와 만나 각인되는 법을 잘 안다. 노래가 보이고, 춤이 들리면서 제이홉의 인생이 압축해서 펼쳐졌다.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옛 체조경기장)에서 포문을 연 첫 솔로 월드투어 ‘호픈 온 더 스테이지 인 서울(HOPE ON THE STAGE’ in SEOUL)‘이 그 실천이었다.

외부 자아와 내부 자아가 충돌하는 이야기인 올드스쿨 풍의 곡이자 1990년대 미국의 전설적인 힙합그룹 ’우탱클랜‘에서 활약한 스타 래퍼 오디비(올 더티 배스터드·Ol’ Dirty Bastard)의 ‘시미 시미 야(Shimmy Shimmy Ya)’를 샘플링한 ‘왓 이프(What if…)’가 첫 곡이라는 점에서 그랬다.

제이홉은 자신의 정체성을 더 파고든 ‘판도라스 박스(Pandora’s Box)‘를 이날 공연의 두 번째 곡으로 택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 ’판도라의 상자‘는 제이홉이라는 활동명을 지은 배경이다. 정호석의 성 이니셜인 제이(J)와 판도라의 상자 안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았던 ’희망(HOPE)‘을 조합해 만들어진 활동명이 제이홉이다.

’판도라스 박스‘는 제이홉이라는 작명 배경이 더 구체화된다. “판도라가 남긴 상자 속의 한 빛 / 때 묻지 않은 소년에게 대입 / 틸 더 엔드(Till the end), 방탄의 희망이 되라는 프레임(frame) / 그렇게 주어진 운명의 수여식 제이 투 더 호프(J to the hope) / 정 투 더(to the) 희망 / 잭 인 더 박스(Jack in the box) / 판도라의 손 / 하나 남은 희망”
제이홉은 브리지 영상을 통해 판도라 상자 밖 자신, 판도라 상자 속 자신을 병치하는 이야기꾼으로서 재능을 증명한다.

또한 이 판도라의 상자는 무대 위에서 물리적으로도 구현된다. 제이홉이 판도라의 상자에 갇혀 있거나 튀어 나오는 구성 등으로 인해 서사를 실제 오프라인으로 확장한 것이다.

메인 무대 25개의 리프트 각각에 4면의 LED를 설치했는데 이건 각각 작은 판도라의 상자가 됐다. 이 판도라의 상자들은 곡마다 각각 혹은 덩어리로 뭉쳐 상승, 하강하며 긴장감을 조성했다. ’데이드림‘(Daydream·백일몽)을 부를 땐, 제이홉은 커다란 판도라의 상자 같은 방에 떨어진 뒤 갇혀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 연출을 선보였다.

’에어플레인(Airplane)‘과 ’에어플레인‘ pt.2 때는 서브 무대와 메인 무대를 연결하는 업·다운 LED 브리지 무대로 마치 달리는 기차 위에 올라서 있는 듯했다.

제이홉이 새 디지털 싱글 ’스위트 드림스(Sweet Dreams)(feat. Miguel)‘(정식 발매는 오는 7일 오후 2시) 무대를 선공개할 때, 무대는 낭만적인 구름 형태로 변모했다. 전역을 하고 나서 어떤 음악을 해야 될 지 고민했다는 제이홉은 “요즘 세상이 사랑 감정이 부족한 것 같다라는 느낌을 좀 받았다”면서 “제가 제대로 된 사랑 노래를 한 적이 있나라는 생각도 했었고 그래서 열심히 써서 나온 곡이 이 노래”라고 설명했다.

스페셜 앨범 ’호프 온 더 스트리트(HOPE ON THE STREET) VOL.1‘ 수록곡을 들려주는 대목은 제이홉 성장서사를 전하는 드라마에 방점이 찍혔다.
’락 / 언락(lock / unlock)‘의 듀엣춤이 특히 뭉클했다. 디스코 시대 최고 밴드 ’시크(Chic)‘ 프로듀서 겸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미국 거장 뮤지션 나일 로저스와 미국 프로듀서 베니 블랑코가 참여한 트랙. ’락 / 언락‘은 댄스 용어인 ’컨트롤(control)‘, ’브레이크(break)‘, ’스텝(step)‘ 등을 키워드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각자 지켜야 하는 선을 노래한다.

락킹은 몸을 잠그는 듯 멈추는 느낌의 동작이 포인트다. 제이홉은 “인생에서 나를 잠그거나 확 놓아버리거나 풀어버려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다큐멘터리 시리즈 ’호프 온 더 스트리트‘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날 춤에서 그 이야기가 들렸다.

제이홉, 아니 정호석 정체성의 출발은 잘 알려진 것처럼 춤이다. 그 성장 과정에서 제이홉 고향 광주의 댄스 크루인 ’뉴런‘이 있다. 제이홉이 중 2때 댄스 크루 형들의 부름을 받고 들어가 활동한 걸로도 유명하다. 뉴런은 신경계의 단위를 뜻하기도 한다. 제이홉의 어릴 적부터 신경계를 자극해온 것이 춤이라는 얘기다. 이 곡이 이번 콘서트 앙코르 곡 마지막 노래였다.

제이홉은 “스트리트 댄스의 장르로 이렇게 무대를 풀 수 있는 아티스트 분들이 몇 분 계실까라는 생각도 들기는 했다. 진심이 담긴 무대”라면서 “제가 어렸을 때부터 스트리트 댄스로 춤을 췄고, 그 뿌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 뿌리를 진정성 있게 담고 싶었다. 그게 앨범으로 나왔고, 그 앨범의 곡으로 이 무대를 만들어 봐서 애착이 가고 애정이 있는 사실 무대”라고 소개했다. “진심이 담긴 무대에 이렇게 좋아해 주시는 걸 보면서 더 이상 행복할 게 있을까요”

아울러 ’원 버스(1 VERSE)‘를 시작으로 ’마이크 드롭‘ 등 방탄소년단 곡들과 ’치킨 누들 수프‘ 등 자신의 솔로곡을 연달아 들려준 대목은, 폭풍우가 몰아치듯 에너지의 몰입력이 대단했다.

제이홉은 작년 10월 전역한 이후 첫 콘서트이자, 2022년 10월 부산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옛투컴 인 부산‘ 이후 약 2년5개월 만에 연 이번 콘서트에서 솔로로서 무게감을 증명했다. ’롤라팔루자 시카고‘ 헤드라이너 이름값은 명불허전이었다. 그만큼 객석의 열기로 폭발적이었다. 제이홉이 “진짜 오랜만에 공연을 하는 거라 우리 아미 여러분들의 열기와 응원이 사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반응할 정도였다.
꼭 7년 전인 2018년 3월2일은 제이홉의 첫 믹스테이프 ’호프 월드(Hope World)‘가 발매된 날이기도 하다. 제이홉은 이를 언급하며 “제 결과물에 민망하고 후회하지 않아요. ’다 피와 살이 되겠지‘ 개념으로 사실 음악하고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당연히 호불호는 있고 누구나 다 좋아하는 음악, 싫어하는 음악이 있고 취향이라는 게 있는 거잖아요. 그것을 다 존중해요. 그냥 그 시절에 제가 되게 순수하게 음악을 썼던 곡 들어보면 영(young)함이 느껴진달까요? 진짜 이렇게 오랫동안 앨범 좋아해주시고, 믿어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고 덧붙였다.

제이홉은 긍정과 희망을 갖고 있는 아티스트가 공연장에서 그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전파할 때 얼마나 큰 위력을 품게 되는지 이날 증명했다. 제이홉은 희망이 남아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아미랑 같이 열었고, 그간 부정적으로 여겨지던 판도라의 상자에 건강한 리듬과 어감을 부여했다.

제이홉의 판도라의 상자는 판도라 상자 속에 희망만 갇혀 있는 부정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한 교훈이 아니라, 그런 확신을 부정하기 위한 긍정이다. 좋은 서사는 이렇게 희망의 서사다. “나는 여러분의 홉(호프), 여러분은 나의 홉(호프).” 이날도 들려준 제이홉의 시그니처 인사는 일종의 주문이 된다.

이날 공연엔 제이홉에 앞서 전역한 뒤 첫 앨범을 낸 방탄소년단 맏형 진(Jin)과 방탄소년단을 발굴한 하이브 방시혁 의장 등도 지켜봤다. 아미는 1만2500명이 운집했다. 지난달 28일과 전날 같은 장소에서도 각각 공연해 날마다 같은 인원이 몰려들었다. 관객수는 3일간 총 3만7500명이다. 제이홉은 오는 13~14일 브루클린을 비롯 북미로 월드 투어를 이어간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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