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가 ‘인공지능(AI) 추경’을 언급하면서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구매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미·중 기업들은 ‘엔비디아 종속’을 피하기 위해 엔비디아와 다른 신경망처리장치(NPU)를 섞어 쓰는 추세이기에 한국 역시 AI컴퓨팅 인프라에 국산 NPU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주요 NPU 기반 AI반도체 스타트업인 리벨리온 박성현 대표는 12일 페이스북에 “이번 추가경정예산안에서 GPU 확보만 이야기가 되는 것이 무척 아쉽다”고 글을 올렸다.
박 대표는 “딥시크는 시작부터 훈련용 인프라와 추론용 인프라를 구별했다고 한다”며 “훈련은 엔비디아 GPU로, 추론 트래픽은 화웨이의 NPU 어센드 910으로 받아냈다”고 글을 시작했다. 그는 이어 “미국의 거대 컴퓨팅 보유 기업들도 기본적으로 엔비디아 GPU를 1옵션으로 하면서 자체 설계 칩을 추론향 2옵션으로 가져간다”며 “이는 자체 칩이 엔비디아보다 우수해서가 아니라, 엔비디아의 가격·물량(PQ) 갑질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IBM·오라클 같은 기업, 이보다 규모가 더 작은 기업들도 엔비디아와 추론향 AI 반도체를 ‘이종’으로 구축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모델을 학습할 때부터 추론 비용을 고려해야 하고, 인프라 관점에서는 학습 인프라와 추론 인프라를 처음부터 동시에 가져가야 한다”며 “처음부터 엔비디아와 비(非)엔비디아 제품을 이기종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엔비디아가 얼마나 무섭냐면, 엔비디아 GPU가 구축되면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모두 딸려 들어온다. 그래서 ‘엔비디아 온리’로 인프라가 구성돼 버리면 이후 다른 하드웨어를 추가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엔비디아 GPU로만 AI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하면 이 회사에 종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향후 기술 발달로 저전력·고성능인 NPU로 옮겨가려 할 때는 선택지가 없어질 수 있다.
박 대표는 “그래서 이번 추경에서 GPU 확보만 이야기가 되는 것이 무척 아쉽다”며 “당연히 엔비디아 GPU 중심으로 인프라가 구성되어야 하지만, GPU만으로 구성돼 버리면 다음 스텝이 꼬여버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수 물량이라도 추론형 NPU, 비 엔비디아 제품이 인프라에 포함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국가 AI 컴퓨팅 센터 공고에 따르면 2030년까지 50%를 국산형 NPU로 채워야 한다고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2030년 50%가 아니라 당장 2025년의 5%”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시작해야 2030년에 겨우 20∼30%가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내다봤다.
정부는 국가 AI컴퓨팅센터 구축을 추진하면서 올해 GPU 1만개를 먼저 확보하기로 했다. 이를 위한 추경 편성이 필요한 상황이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최근 국정핵심과제 2차 국민브리핑에서 대규모 GPU 확보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 장관은 “국가 AI컴퓨팅센터에 들어갈 GPU를 올해 1만개 구입해 슈퍼컴퓨터의 GPU 8000장과 합쳐 총 1만8000만개를 확보하려던 계획이 국회 예산이 모두 동결된 상황에서 심한 보릿고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또 “추경이 조속히 추진되지 않는다면 GPU를 올해 도입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며 “주무부처 장관으로 굉장히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앞서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달 당정 협의회에서 내년 상반기까지 최첨단 GPU 보유량을 2만장으로 늘리고 이에 필요한 예산 확보를 위해 2조원 규모의 추경을 추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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