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부모님 카톡, 봐도 될까”…디지털 유산 공론화 시급

  • 뉴시스(신문)
  • 입력 2025년 3월 9일 09시 34분


제주항공 참사 후 고인 SNS 계정 접근 둘러싼 갈등 발생
해외 주요 플랫폼, 생전에 디지털 정보 처리 기능 제공
입법조사처 “보호 범위, 금전 가치·프라이버시 침해 따른 유형화 논의 필요”

ⓒ뉴시스
지난해 말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디지털 유산 이슈가 재점화했다. 사고 희생자 유가족이 장례 진행을 위해 희생자 지인 연락처, 희생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 접근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국회가 디지털 유산 정의, 제공 범위 등 규정 정립을 조속히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7일 ‘고인의 디지털 정보 처리 현황과 과제’ 보고서를 발간해 “디지털 기술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우리나라도 고인 디지털 정보의 체계적인 처리 방안을 시급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희생자 지인 연락처 필요한 유족…디지털 유산 규정 없어 혼란 가중

지난 참사 당시 유가족대표단은 희생자의 카카오톡 등 SNS 계정에 등록된 지인 정보 등을 유족에게 공개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고인 지인에게 부고 소식을 알리는 등 장례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네이버와 카카오 모두 개인정보 보호 원칙에 따라 회원 정보 등을 제공할 수 없다고 전했다. 회원의 아이디 및 비밀번호와 같은 계정 정보를 일신전속적(법률에서 특정한 자에게만 귀속하며 타인에게는 양도되지 않는 속성) 정보로 보아 제공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희생자 지인 연락처가 필요하다는 유가족 요구가 커지자 삼성전자, 카카오 등은 정부와의 협의 끝에 전화번호만 제공하기로 했다. 희생자 휴대전화가 분실·소실된 점을 고려한 결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법령 해석 검토를 거친 결과 전화번호만 제공하는 데는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참사에서 고인의 디지털 정보 제공 여부를 둘러싸고 유족과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 간 갈등이 발생하는 사례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디지털 기록이 개인 유산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법 조항이 마련되지 않았다.

반대로 해외 주요국과 주요 플랫폼 사업자는 고인의 디지털 정보 처리에 대한 일정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은 본인이 사망하거나 무능력해지는 경우 수탁자가 디지털 재산을 관리하는 법을 대부분의 주에서 도입했다. 프랑스는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를 사후에도 일정한 범위에서 유지하는 내용을 개인정보처리법에 반영했다.

독일은 연방대법원이 디지털 정보도 전통적인 상속법상 포괄승계 원칙에 따라 처리된다고 판결함으로써 기존 법 체계 내에서 해석하고 있다.

구글, 애플, 메타는 이용자가 생전에 자신의 디지털 정보에 대한 처리 방안을 정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구글은 디지털 유산 프로그램 ‘휴면 계정 관리자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용자가 일정 기간 구글 계정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사진, 이메일, 문서 등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도록 미리 설정해 둘 수 있다.

애플은 사망 시 사진, 메시지, 메모 등 데이터를 상속받을 관리자를 최대 5명까지 지정해 접근 키를 부여하도록 했다. 메타도 ‘유산 접근’ 기능을 통해 유족이 고인 프로필 사진 등 일부 정보를 바꿀 수 있다.

조사처 측은 “고인 디지털 정보를 둘러싸고 유족, 고인,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이들 간의 균형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며 “고인의 디지털 정보에 대한 접근 제한을 일기장·편지와 같은 기존 기록물과 다르게 취급해야 할 필요성은 무엇인지, 보호할 고인의 디지털 정보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입법조사처 “디지털 유산 규정 논의 시급…홍보도 중요”

조사처는 “디지털 정보 성격에 따라 금전적 가치와 프라이버시 침해의 정도를 기준으로 유형을 구분하고 유형별로 처리 방안을 달리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전적 가치성이 높고 프라이버시 침해성이 낮은 정보는 상속되도록 하고 프라이버시 침해성이 높은 정보는 본인 지정이 있는 경우에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금전적 가치성과 프라이버시 침해성이 모두 낮은 정보는 본인 지정이 있으면 그에 따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상속인 또는 법적 권한이 있는 자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용자 본인 의사를 가장 존중할 수 있도록 이용자가 생전에 자신의 디지털 정보의 처리 방법을 정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디지털 유산 규정이 만들어질 경우 이용자가 생전에 디지털 정보 처리 방법을 지정하는 기능이 실효성을 갖도록 정부와 플랫폼 사업자 등이 이용자에게 적극 홍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애플, 구글이 디지털 유산 관련 기능을 제공하고 있지만 많은 이용자가 기능을 몰라 사망 후 계정이 방치되거나 유족과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 간에 접근 권한 문제로 갈등을 빚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조사처는 “이용자에게 사전 설정 기능을 명확하게 안내하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를 요청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사후 디지털 정보 처리를 위한 사전 설정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용자가 생전에 자신의 디지털 정보에 대한 처리 방향을 결정하도록 유도하는 교육이나 홍보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사처는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의 개별 약관을 통해 고인의 디지털 정보를 처리하고 있다. 관련 개정법률안이 제18대 국회부터 지속적으로 발의돼 온 만큼 국회, 국민, 사업자 등이 함께 논의해 ‘민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에 고인의 디지털 정보에 대한 사후 처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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