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대한민국은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을 경험했다. 시민들은 변화와 정의를 요구했고, 민주진보진영은 그러한 기대를 안고 다시 한 번 권력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8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또다시 비슷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탄핵이라는 위기와 조기 대선이라는 기회. 반복되는 역사 앞에서 민주진보진영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번 대선에서도 주목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쏠리고 있다. 진보당 김재연 후보, 정의당 권영국 후보 등 여러 진보적 인물이 출마를 선언했지만, 현실 정치의 무게는 여전히 거대 야당 후보에게 실린다. 특히, 2024년 총선에서의 압승과 여당의 몰락 이후 치르는 대선이라는 점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유리한 흐름이 조성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최근 이재명 후보의 행보다. 그는 경제성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차별금지법에 대한 회의적 태도, 개헌에 대한 애매한 입장을 보이며 중도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복지와 개혁을 내세웠던 과거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라는 그의 구호는 현실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경제 문제와 사회 문제를 분리해 사고하는 태도는, 애초에 경제와 사회가 긴밀히 얽혀 있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과연 타당한가.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입장 역시 매우 우려된다. 이재명 후보는 친일파 청산에 대해 경선 시작 이후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고, 대선 후보로 확정된 후 첫 행보는 이승만과 박정희의 묘역을 참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억압받는 민족에 대한 반인간적 행위를 일삼은 친일파들과, 자신의 권력을 위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시키고 자유를 탄압한 두 명의 독재자들을 참배하고 용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실현을 외치는 대통령 후보가 가야 할 길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적 생존을 위한 투쟁과 인간 존엄을 위한 투쟁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둘은 하나이며, 서로를 구성한다.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적 배제를 낳고, 사회적 차별은 경제적 약탈로 이어진다. 개혁을 표방하는 정치가라면, 경제와 사회 정의를 함께 끌어안아야 한다. 또한 역사 속에서 승자들과 강자들로 인해 지워지고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그들의 목소리를 현재로 소환하는 것이 개혁의 진정한 시작이다. 카뮈에 말처럼, 공화국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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