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의 이상과 현실... 이재명 정부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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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재명 정부가 추진할 의료개혁에 대해서 이재명 정부의 공직자를 대신해서 '변명'을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동병상련의 심정 때문입니다.

필자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청와대에서 어공(정무직, 별정직 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문재인케어, 치매국가책임제, 자살예방국가행동계획, 발달장애인지원종합대책, 코로나19 대응 등에 참여하면서 큰 성취감과 보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직자 생활 5년을 보낸 뒤 깨달은 점은 국민, 언론, 시민단체, 전문가로부터 욕먹는 게 공직자의 숙명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처음엔 우리의 노력과 성과를 몰라주는 것이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95개를 했는데, 하지 못한 5개를 지목하며,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몰아붙일 때는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지엽말단의 사안에 꼬투리가 잡혀 정작 중요한 과제가 좌초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국민을 위한 의료개혁을 추진할 이재명 정부의 공직자들도 곧 이런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현직일 때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변하기도 힘듭니다. 핑계와 책임 회피로 더 큰 욕을 부르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그런 처지에서 자유로운 전직 공직자로서 정부의 의료개혁에 대해 국민, 언론, 시민단체, 전문가의 이해를 구하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 개혁의 우선순위와 성공의 역설

벌써부터 의료분야의 단체와 전문가들은 이재명 정부가 반드시 이뤄야 할 의료개혁 과제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서로 상충하는 요구들도 많습니다. 어떤 단체는 아직까지도 의료개혁의 방향성과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정부를 질타하는 입장을 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서야 보건복지부장관이 임명되었고, 국정기획위원회의 활동이 진행 중인 상황을 감안하면 너무 이른 요구입니다.

작년부터 이어진 의정갈등 해소가 시급한 현안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출범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이재명 정부가 역량을 쏟아야 할 우선순위 분야가 의료인지는 의문입니다. 최근의 의정갈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의료제도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와 신뢰는 매우 높은 편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매년 조사하고 있는 의료서비스경험조사 결과에 따르면, 약 75%의 국민이 우리나라 의료제도에 만족하고, 제도를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의료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비율은 20%대 중반에 그쳤습니다. 비슷한 문항으로 조사한 미국의 결과에서는 '의료제도를 완전히,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응답이 80%에 육박하고, 영국도 60%가 넘습니다.

우리나라 의료제도에 많은 개선과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비용으로, 이런 정도의 우수한 질의 의료서비스를, 이런 정도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나라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이런 성취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별도로 따져봐야겠지만,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의료제도를 발전시켜 왔고, 다수의 국민이 현 제도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그런 만큼, 일부 의료제도의 개선과 보완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현상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크지 않습니다. 일종의 '성공의 역설' 일 수도 있습니다.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급하고 중요한 국가적 난제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인구구조 변화, 소득과 자산 불평등, 일자리 문제, 기후변화 대응, 국제경제질서 변화, 남북관계 변화 등. 그나마 의료는 상대적으로 멀쩡한 분야에 속합니다.

특정 분야의 단체와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에 정부가 역량을 집중해서 성과를 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모든 분야를 아울러 국정 운영을 해야 하는 책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순위와 순서를 따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우선순위와 순서에 따라 국가적 난제들을 풀어낼 여지를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 개혁의 시작과 완료의 시차

문재인 정부는 공공병원 확충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5년 임기 동안 8개 공공병원의 신설, 6개 공공병원의 이전·신축, 11개 공공병원의 증축 등 총 25개 공공병원의 신증축을 결정했습니다.

역대 어느 정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실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진보적 단체와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공공의료를 위해 한 것이 없다"라고 야박한 평가를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25개의 신증축을 결정했지만, 문재인 정부 임기 중에 완공된 병원은 한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빨리 추진된 충남권 어린이재활병원도 문재인 정부가 끝난 후인 2023년에야 완공되었습니다. 공공병원은 기획에서 완공까지 10년 가까이 걸리는 중장기 사업입니다. 오늘의 이재명 대통령이 있게 한 성남시의료원도 설립운동 시작으로부터 17년, 기공식부터 따져도 7년이 걸려 완공되었습니다.

문재인케어와 같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의 효과는 단기간에 나타나지만, 공공의료 강화, 의료전달체계 개편과 같은 공급구조개혁의 효과는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정책을 시작한 정부, 정책을 추진한 정부, 정책 성과를 얻는 정부가 모두 다릅니다. 5년짜리 단기 정부가 선뜻 손대기를 꺼려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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