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도 봄은 오는가2017년 3월 10일, 박근혜가 탄핵되던 순간이 생생하다. 그 시각에 나는 동 주민센터에서 태어난 지 열흘이 된 첫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던 중이었다. 서류를 작성하는 와중에 주민센터 공무원들과 함께 파면 선고를 들었고, 일제히 터진 탄성으로 주민센터의 공기가 순식간에 신선해졌음을 느꼈다. 선고 당일 탄핵에 반대하는 네 명의 시민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지만, 이제 막 겨울을 벗어나 시작된 대통령 선거는 장미를 피우며 문재인 대통령 당선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과연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마은혁 재판관을 임명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지켜지지 않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구속 취소 소송에서 승리해 윤석열 대통령이 구치소 문을 나서며 정국이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파면 여부마저 안갯속인 가운데 시민들은 탄핵 찬반으로 나뉘어 총 대신 손팻말을 들고 내전을 치르고 있다. 파면이 선고되더라도 첨예한 갈등이 해소될지, 대선을 안정적으로 치를 수 있을지, 나아가 당선된 대통령이 국정을 원만하게 운영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과연 2025년에도 온전히 장미를 피울 수 있을까.
공권력의 상징 파스케스, 파시즘이 되다12·3 내란 사태와 서부지검 폭동으로 도를 넘는 광경들이 펼쳐지면서 이따금 '파시즘(fascism)'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파시즘이라는 말은 고대 로마의 권력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던 '파스케스(fasces)'에서 유래했다.
파스케스는 나무 막대기 여러 개를 붉은 띠로 묶은 다음 중간에 도끼를 하나 끼워 넣은 모양새로 로마 최고 권력자인 집정관을 비롯해 최고위급 권력자들에게만 주어진 물건이었다. 그야말로 공권력의 상징. 로마 황제도 12개 정도를 갖고 있었는데 로마 공화정 말기에 스스로 '종신 독재관'이 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24개나 갖고 있었다니 '왕이 되려 한다'라는 의혹을 품고 그를 암살해 버린 원로원 의원에게도 나름의 근거는 있었던 셈이다.
'묶음' 또는 '다발'을 의미하는 이 말은 로마 시대 이후 종적을 감췄다가 현대 이탈리아에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바로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탈리아 전투파쇼'라는 단체와 '국가 파시스트당'을 연달아 만들며 당의 상징으로 파스케스를 지켜든 것이다.
'동지가 아니면 적'이 철의 규율, 한국에서는?'이탈리아 전투파쇼'의 구성원은 다양했다. 왕년의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 공화주의자, 페미니스트가 모였다. 무솔리니 자신도 사실 왕년의 사회주의자였다. 하나의 공유된 이념은 없었고 공산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단결하자며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런 연유로 파시즘을 하나의 '주의(-ism)'로 규명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파시즘이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강요한 규범이 있었으니 바로 '동지가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 단순 논리의 극단성이었다. 파시즘은 기본적으로 공동의 적을 지목하고 그에 대항해 무조건적인 단결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그러다 보니 중간은 없고 극단만 남게 된다. 거기에 복음주의와 같은 신앙까지 결부되면 더욱 극단화되는데 오늘날 탄핵 반대 집회나 한동훈 전 대표조차 품지 못하는 국민의힘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분단 국가인 한국에서 파시즘은 더 쉽게 작동한다. 사회학자이기도 한 조희연 전 서울시 교육감은 과거 논문에서 한국이 '내전적 파시즘'에 빠져있다고 했는데, 과거 내전 대상이었던 북한과 현재 내부의 비판 세력을 동일시 해서 '가상의 적'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한국 정치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윤석열이 계엄 선포를 하며 '종북 반국가 세력'을 운운한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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