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 바로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입니다. 스토커는 드라큘라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는 가장 훌륭한 사람이다. 군인, 정치가이자 연금술사, 특히 연금술에 관해선 그 시대 최고의 과학적 지식을 자랑한다. 그는 강한 뇌를 소유했으며 비교 불가한 학문적 지식 그리고 두려움과 후회를 모르는 심장의 소유자이다. 그 시대 그가 시도하지 않은 지식의 분야가 없을 정도였다. - 드라큘라, 434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백작 드라큘라는 군인, 연금술사, 학자의 모습을 했지만 실체는 흡혈귀입니다. 그는 생존을 위해 흡혈을 해야 하며 그의 희생자는 흡혈균으로 전염되어 또 다른 뱀파이어가 됩니다. 뱀파이어는 햇빛을 싫어하며 남의 집 방문 시 초대 없이는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귀족, 군인, 과학자. 야밤을 좋아하고 초대받아야 들어가는 습성을 지닌 드라큘라는 16~19 세기 유럽의 제국주의를 연상시킵니다. 과거 유럽의 열강들은 귀족들의 나라로 군사력을 키우고 다양한 과학적 지식을 추구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본모습은 드라큘라처럼 희생자(원주민)들의 신선한 피를 노리는 뱀파이어입니다. 이들은 신대륙에 들어갈 때 선의, 친선, 상호발전 같은 명목으로 접근합니다. 드라큘라처럼 초대를 받아 들어가는 형식을 취한다는 말입니다. 흡혈을 위한 사전 작업 단계이며 보안이 생명이니 은밀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다가 일단 들어가면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원주민들을 무력화시키고 맺은 약속 다 무시하고 흡혈 파티를 즐깁니다.
원주민의 피를 빨아먹기까지제국주의와 드라큘라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근대 제국주의 뱀파이어는 흡혈 사업을 복음 전파와 애국심으로 정당화하고 미화한다는 점입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베스트셀러 <총균쇄> 제3장 '카하마르카 충돌'은 스페인 드라큘라가 잉카 제국에 들어가서 어떻게 원주민의 피를 빨아먹고 이를 정당화하는지 그 과정을 보여줍니다.
1532년 11월 15일 페루의 카하마르카. 당시 잉카 제국의 내분을 수습하고 간신히 왕국의 안정을 되찾은 태양의 아들 아타우알파는 168명의 병력을 이끌고 온 스페인 총독 피사로를 맞이합니다. 선의와 친선을 내세우며 접근한 스페인 측과 잉카제국의 사신들이 몇 개월간에 걸친 협의 끝에 성사된 만남이었습니다.
이상한 복장에 처음 보는 무기들을 소지한 이방인들이 어떤 목적으로 접근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던 아타우알파. 그는 8만 명에 달하는 군사가 있었으니 불과 200여 명 정도의 낯선 무리들이 무장 도발을 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을 겁니다.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접근한 피사로와 그의 일당들은 매복해 있다가 무기라고는 돌도끼뿐인 잉카의 전사들을 총과 칼로 순식간에 무력화하고 아타우알파를 인질로 잡습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 왕을 사로잡은 후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스페인 왕의 명령에 의하여 이 땅을 정복하러 왔다.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과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기 위함이다. 하늘과 땅 그 안의 모든 것의 창조자이신 하느님께서 허락하셨다. 그래서 너희들이 그분을 알도록 그리고 너희들이 짐승과 악마 같은 삶에서 벗어나도록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적은 숫자로 너희들을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너희들이 살면서
저지른 실수를 생각한다면 스페인 왕의 명령에 의하여 너희 땅에 와서 우리가 베푼 선행을 이해할 것이다. 우리의 주군께서 너희의 오만을 길들여서 어떤 인디언도 크리스천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허락하셨다. - 총균쇄, 71
피사로는 잉카 왕의 몸값으로 거의 6톤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금 (현재 시세로 375억 달러)과 12톤의 은을 요구하며 잉카 제국의 8만 전사들과 대치합니다. 그리고 요구한 금과 은을 챙긴 후 석방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아타우알파를 교살합니다. 잉카 왕이 죽자 나라는 다시 내분 상태에 빠졌고 이를 적절히 활용한 스페인의 계략과 공격으로 잉카 제국은 멸망합니다.
스페인 드라큘라는 잉카인의 피를 빨아먹고 잉카인의 95%를 말살하면서 복음 전파를 위한 선행이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들고 간 성경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