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대선에 관한 세 개의 장면많은 이들에게 지난 2022년 대선은 5월 9일 늦은 밤 개표방송에서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을 앞지르는 장면으로 생생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보다 몇 가지 장면들이 더욱 강렬하게 남아있다. 윤석열의 12.3 내란사태로 인해 3년 만에 다소 이르게 다시 돌아온 대선 시기에 이 장면들은 다시금 살아 돌아와, 그동안 묻어두었던 질문을 떠오르게 하고 있다. 아래 세 기억은 내게 각각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의 분열상, 민주당의 진정한 민낯, 그리고 그 모든 조건이 결합해 모두가 패배자로 남았던 쓰라린 결과를 상징하는 장면들이다.
첫 번째, 2021년 하반기 당시에도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동자-민중 대선 경선'을 제안했다. 5개 진보정당(노동당, 녹색당, 사회변혁노동자당, 정의당, 진보당)과 함께 진보진영 단일 대선후보를 다가오는 2022년 3월 20대 대선에 내세우고자 했다. 대선을 앞두고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 논의가 지속되던 시기였고 진보정당들 간 논의가 진척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일화를 아래로부터 압박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 해 정부는 일찌감치 2021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 대해 전면불허방침을 내렸다. 당시 플랫폼c라는 단체에서 일하고 있었던 나는 전국노동자대회날 서울시내 곳곳에서 정부의 방해를 피해 열린 산별노조들의 사전대회에서 '민중경선'의 필요성을 알리는 선전물을 배포하고 이를 요구하는 연서명을 받는 일을 하게 되었다.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는 도중 결국 민주노총은 탄압을 뚫고 동대문사거리에서 전국노동자대회 본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내 우리도 본대회의 장으로 옮겨 민중경선 홍보와 서명운동을 이어갔다.
그 대회에서 5개 진보정당의 대표는 동대문사거리 한가운데에 세운 연단에 함께 손을 맞잡고 올랐고 공통 사회 개혁 요구를 발표했다. 하지만 결국 그 해 12월 29일 단일화 방식에 관련한 합의가 무산되며 20대 대선에는 정의당 심상정, 노동당 이백윤, 진보당 김재연의 세 진보정당 대선 후보가 본선에서 경쟁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2022년 1월의 장면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가 '걸어서 민심 속으로' 행사의 일환으로 연남동 '연트럴파크'를 방문했다. 나를 포함한 플랫폼c 사무실 상근자들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소속 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차별금지법 제정하라는 손피켓을 들고 이재명 후보를 쫓아나섰다. 거리를 걷는 내내 수많은 지지자들이 이재명 후보를 둘러쌌고, 많은 이들의 환호성과 셀카 촬영 요청에 응했던 이재명 후보는 단 한번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을 묻는 활동가들의 질문에 답하지도 않았고 피켓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경호원들인지 당직자인지 알 수 없는 이들만이 피켓을 든 우리를 계속해서 밀쳐냈고, 조금이라도 후보의 시선과 그를 둘러싼 카메라에 포착되기 위해 다가가는 눈치싸움만이 물밑에서 반복될 뿐이었다. 같은 시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지하철 탑승시위를 그 전 해 12월부터 반복하는 중이었고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입장을 요구했다. 4명의 주요 대선 후보 중 정의당 심상정 후보만이 서울역을 찾아 TV토론에서의 약속을 재확인해주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마지막 대선후보 토론회에서야 이동권을 보장하겠다는 말 한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국민의힘 윤석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세 번째는 2022년 5월의 기억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후의 한 술자리였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있었다. 모두가 꽤 취한 뒤 한 명도 아니고 두세 명이 내게 말했다. 투표는 했지만 정의당 심상정을 찍지 못했는데, 그래서 미안하다고. 내가 몇 년 째 정의당 당적을 가지고 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아는 친구들이었다.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표론은 이미 지난 20여 년간 진보정당 후보들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내 친구들의 표가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심상정의 득표율 2.37%는 이재명과 윤석열의 득표율 차이 0.73%보다 높았다. 이는 정의당에 대한 많은 공격의 빌미가 되고 있었다. 이재명에게 투표한 친구들은 그가 부동산과 노동 정책에 있어서 문재인 정부의 실패에 대한 반성이 없는,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제대로 언급이 없는, 의석 180석을 가지고도 5년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집권여당의 후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를 찍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모두가 패배하고 상처입은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서로에게 해줄 말은 없었고 그저 탓할 이 없는 미안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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