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10년차 장애인의 '탄핵부터 대선까지'... 이재명 정부에 바라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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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서 껴입다 보니 알록달록하네요."

빨간 후드집업을 입고 빨간 전동휠체어를 탄 한 여성이 경복궁역을 빠져나와 민트색 패딩을 덧입었다. 일(24도)·월(21도)·화(21도)·수(24도)를 지나 기온이 뚝 떨어진 목요일(19도) 아침이었다. 휠체어 등받이엔 빗방울이 떨어졌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구호와 노랫소리가 나는 쪽으로 그가 손잡이를 밀고 휠체어를 굴렸다. 장애인 권익옹호 활동에 나선 중증 뇌병변장애인 최영은(34)의 출근길이었다.

윤석열 탄핵 광장(광화문 원표공원·서십자각) 근처엔 '장애인 인권침해 해결'을 외치는 또 다른 광장(서울정부청사 앞)이 있었다. 윤석열 탄핵 전 이곳으로 출근한 영은은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라는 주황색 조끼를 빨간색과 민트색 외투 사이에 껴입었다. 시설에서 살다 나온 장애인들의 '시국선언문'이 영은이 멈춰 선 단상 아래 구호처럼 터졌다.

"장애인 거주시설에 입소한 우리의 긴 세월은 일상이 곧 계엄령 상태였다. 자유가 없고 인권이 없었다. 아직도 시설에 3만 명의 장애인이 남겨져 있다. 감금과 통제 속에서 하루하루 3만 개의 삶이 지워진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가 작성한 '탈시설장애인 시국선언문' 중)

하루하루 지워진 '3만 개의 삶'(2023년 말 기준 시설 1529곳 2만 7352명 거주) 중 하나였던 영은을 만난 건 지난 3월 27일이었다. 영은은 장애인 거주시설 꽃동네(충북 음성)에서 20년을 살다 나와 자립생활을 이어가는 탈시설 장애인이다. 영은의 이야기는 언론에도 여러 번 소개됐다. 함께 탈시설한 남편(이상우·38)과의 결혼, 제주도 신혼여행, 임대아파트 이사로 이어졌던 이야기가 이번엔 대선 국면과 맞물려 또 다른 이야기로 흘러갔다.

올해 탈시설 10년(2025년 3월 13일)을 맞은 영은은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내란 사태와 조기 대선을 함께 통과했다. 지난 석 달간 영은과 나눈 대화와 휴대전화로 주고받은 글들엔 그가 바라는 탄핵 이후 세상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시설에서 거주하는 장애인들", "후배 장애인들"을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탈시설 선배' 영은이 아침 출근길에 올랐다.

탈시설 10년, 평범해 특별했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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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씨 혼자 출근했어요?"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영은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휴대전화 자판을 두드렸다. 오른손으로 '진소리'라는 음성지원 앱을 켠 뒤 자음과 모음을 한 자 한 자 눌렀다. 단어와 단어 사이 띄어쓰기도 빼먹지 않았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자 청아한 기계음으로 음성 한 문장이 전달됐다. "활동지원사 선생님과 함께 왔어요." 영은은 자신의 활동지원사를 "지원쌤"(정지원 활동지원사)이라고 불렀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개찰구를 빠져나가는 영은을 지원쌤이 뒤따랐다.

출근 전부터 퇴근 후까지 지원쌤은 영은의 모든 동선에 함께했다(오전 9시~오후 10시 활동지원). 영은은 서울 혜화역 인근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2016년부터 장애인 권익옹호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장애 관련 집회·기자회견에 참석하거나 장애 인식개선 강의에 나서는 등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일을 한다. 퇴근 뒤엔 같은 빌딩에 있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야학 수업을 듣는다. 영은은 2015년 3월 13일 꽃동네를 나와 활동지원을 받으며 이러한 자립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출근길 경북궁역에서 만난 노들야학 교사들이 영은의 탈시설 10주년 소식을 전해 듣고 환한 웃음으로 말했다. "와 축하축하!" "떡 돌려야지!" "언니 다음 달부터 노들 안 나오는 거 아냐?" 한바탕 웃음으로 답한 영은은 진소리를 켜고 자음과 모음을 한 자 한 자 눌러 썼다. 영은의 휴대전화에서 "기뻐요"라는 짧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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