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지우는 정치, 삶을 되돌리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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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자신의 시 속에서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거닐었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끝없는 도망자였다. 플로렌스의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결국 도시에서 추방당한 그는, 고향의 돌길과 친구들, 사랑하는 언어를 뒤로한 채 먼 타국에서 유랑해야 했다. 단테에게 추방은 단순히 물리적 이별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명예, 삶의 목적을 동시에 빼앗긴 처절한 단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 그는 로마로 향하는 순례길에 몸을 싣는다.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로마 교황청이 선포한 희년(Jubilee)이었다. 희년은 빚을 탕감하고 노예를 풀어주며, 억울하게 잃은 땅과 집을 되돌려주는 해였다. 신 앞에서 죄를 씻고 새 삶을 허락받고자 하는, 단테에게는 마지막 구원의 손길 같았다. 나는 때때로 그 장면을 떠올린다. 먼 길을 걸으며 자신에게도 다시 돌아갈 고향과 이름이 있을 수 있기를 바랐던 한 사내의 절박한 모습을. 단테에게 희년은 단순한 종교의식이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지는 두 번째 기회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올해는 25년만에 돌아오는 카톨릭의 희년의 해이다.

나는 단테가 걸었던 그 길 위에서 오늘의 정치와 사회가 맞닿아 있음을 본다. 단테의 시대처럼 지금 이곳에도 사람들을 옭아매는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있다. 그것은 '빚'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삶을 파고들어 그들을 짓누른다. 한때 이재명이 성남시장으로 일하던 시절, 그는 그 쇠사슬을 풀고자 했다. 그의 정책 이름은 단테가 희망을 걸었던 그 단어에서 왔다. 쥬빌리(Jubilee). 빚으로 삶의 문턱에 주저앉은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허락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이재명이 착안한 것은 멀리 바다 건너 미국에서 시작된 일이기도 했다. 월가 점거 운동에서 분출된 분노 속에서 태어난 '롤링 쥬빌리(Rolling Jubilee)'는 이미 회수가 거의 불가능해진 장기 연체 채권을 시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사들여 아예 소각해 버리는 방식이었다. 금융 시스템이 무가치하다고 판단해 헐값으로 내던진 종잇조각들을 다시 인간의 존엄으로 되돌리는 시도였다. 나는 이 이야기가 늘 인상적이었다. 돈의 세계가 흘린 부스러기를 주워 모아 사람들의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발상이 놀랍고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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