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월째 장관 공백, 역대 최장 기간 동안 장관이 없는 부서가 바로 현재 여성가족부다. 최근 이재명 정부의 여성가족부 장관 지명자인 강선우 의원이 자진사퇴로 낙마한 후, 아직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가 지명되지 않은 상태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기다리며, 그를 검증할 정책적 과제를 짚어본다. 여성가족부가 추진해야 할 주요 정책은 다음과 같다.
① 비동의강간죄 도입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관련 형사법은 오랜 기간 '폭행 또는 협박'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왔다. 현행 형법 제297조는 강간죄의 구성 요건으로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한 간음'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는 곧 물리적 저항이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성폭력을 판단하는 구조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기준은 성폭력 피해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에 따라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성범죄를 판단하는 비동의 강간죄의 도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비동의 강간죄는 말 그대로 상대방의 명시적 동의가 없는 성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삼는 법적 개념이다. 유럽연합을 비롯한 국제 인권 기준은 이미 '동의 없는 성관계는 범죄'라는 원칙을 채택하고 있으며,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은 동의 중심 강간죄를 법제화했다. 특히 스웨덴은 2018년 '성관계의 자유로운 동의'를 중심으로 한 성범죄법을 도입한 이후 성폭력 기소율과 유죄 판결이 크게 증가하는 효과를 보였다.
한국에서도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촉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법 개정 요구가 본격화됐다. 같은 해 여성단체들은 "동의 없는 성관계는 강간"이라는 구호 아래 국회 앞 시위를 이어갔으며, 2020년에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을 위한 공동행동'이 발족되어 시민 청원, 토론회, 캠페인 등을 조직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2022년, 현행 강간죄가 피해자의 법적 보호를 제한한다고 지적하며 동의 기준의 도입을 국회에 권고한 바 있다.
현행법의 문제는 피해자 보호의 실질적 부재에 있다. 많은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위협, 관계적 권력 차이, 정서적 압박 등으로 인해 물리적 저항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다. 그러나 법원은 여전히 '적극적인 저항'의 존재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다수의 성폭력 사건이 불기소 또는 무죄로 종결된다. 피해자는 성폭력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격렬하게 저항했는지를 증명해야 하며, 이는 이차 피해를 야기한다.
비동의 강간죄 도입은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동의를 기준으로 법을 설계할 경우, 성관계는 쌍방 간의 명확한 합의에 기반해야 하며, '묵시적 동의'나 '거절하지 않았으므로 동의한 것'이라는 논리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된다. 이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단순한 선언이 아닌 실질적인 권리로 만들 수 있는 기초이기도 하다. 비동의강간죄 도입 방향(명시적 동의 기준, 처벌 수위, 수사 절차 개선 등)을 후보자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는지가 검증의 핵심이다.
② 낙태죄 입법 공백 해소한국 사회에서 낙태죄 폐지는 단순한 법률 개정이 아니라,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 회복을 요구한 오랜 투쟁의 결과였다.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66년 동안 존재했던 낙태죄는 여성의 임신중지를 '범죄'로 규정하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 제도는 태생부터 남성 중심적 시선에 기반한 불균형한 법이었다. 그 안에서 여성들은 자신과 태아의 삶 사이에서 고통스러운 선택을 강요받으며, 사회적으로 침묵을 강요당해 왔다.
낙태죄 폐지를 위한 시민운동은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되었으며, 특히 2010년대 이후 더욱 조직적이고 공개적인 목소리로 확장되었다. 2010년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을 폐지하라'는 요구로 구성된 '천주교 낙태죄 폐지 촉구 여성 100인 선언'과 같은 행보는 초기의 도전이었고, 이후 2016년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결성되면서 운동은 체계성과 지속성을 갖추었다.
운동의 정당성은 헌법적 가치에 기초한다. 첫째,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신체의 자유는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이다. 여성이 자신의 신체와 삶에 대한 결정을 타인—특히 국가나 법률의 이름 아래 통제받는 것은 근본적으로 헌법상 평등권과 자유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둘째, 재생산 권리는 단순한 건강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정치적 권리이며, 여성들이 교육, 직업, 가족, 인간관계 등 삶의 중요한 영역에서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의 핵심이다.
시민운동은 또한 낙태죄가 사회적 약자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했다. 안전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환경은 경제력, 정보 접근성, 사회적 지지망과 직결되어 있었고, 낙태죄는 저소득층, 미혼 여성, 청소년 등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을 비공식적이고 위험한 방식의 시술로 내몰았다. 그로 인해 건강을 해치거나, 법적 처벌의 위협 속에 심리적 고통을 겪는 여성들이 다수 발생했다.
운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거리에서의 집회와 행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정보 공유, 국제 연대, 언론 기고와 인터뷰, 그리고 낙태 경험자들의 증언 등은 모두 공감과 연대를 확장시키는 중요한 매개였다. 여성들은 '죄인이 아니라 시민'임을 선언했고, "낙태는 범죄가 아니라 권리"라는 구호는 운동의 정체성과 목표를 정확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끊임없는 노력은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헌법재판소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이유로 형법 조항에 대해 위헌성을 인정했고, 국회는 2020년까지 관련 법을 개정하라는 시한을 부여받았다. 비록 이후 법 개정은 정치적 지체로 실현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낙태죄는 효력을 상실했고, 이는 시민사회와 여성운동이 만든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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