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은 최근에 출간한 <김대중 망명일기>(한길사)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기 위해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을 인터뷰했다. 1930년에 태어나 올해 95세인 권노갑 이사장은 현존 인물 중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형님', '선배'라고 호칭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며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화운동과 야당 생활을 할 때 최측근 인사로서 험난한 현대사의 파고를 함께 헤처나갔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 관련해 권노갑 이사장만이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이 많으며, 여기에는 '김대중 1차망명(1972년 10월 17일~1973년 8월 8일)'과 '김대중납치사건(1973년 8월 8일~1973년 8월 13일)'도 포함된다. 그와 같은 배경에서 지난 26일 권노갑 이사장을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진행했으며 질문은 필자가 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이다.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 선포됐을 당시 동교동 상황-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국회는 해산되고 정치활동이 금지되는 등 유신독재가 시작됐는데요,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때 이사장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때 이희호 여사께서 연세대학교에서 박사 과정 공부를 하셨어요. 10월 17일 오후에 이희호 여사님과 내가 함께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서 연세대학교로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여사님께서 '노갑씨, 아무리 봐도 이상해요. 다시 쿠테타가 날 것 같아요'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내가 '여사님, 저들이 아무리 독재를 한다고 해도 쿠데타를 다시 일으키는 것은 어렵지 않겠습니까'라고 답을 했어요.
그렇게 하고 나는 차에서 여사님을 기다리면서 라디오를 들었는데 비상계엄이 선포된 거예요. 여사님께서 공부를 끝내시고 나오셔서 내가 '비상계엄이 선포됐다'고 말씀드렸더니 여사님께서는 크게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시면서 '결국 내 말이 맞았네요'라고 하셨어요.
-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들으셨을 때 상당히 혼란스러우셨을 것 같습니다.
"그때는 참 혼란스럽고 모든 것이 불안한 상황이었어요. 박정희 정권이 동교동을 향해 여러 탄압을 할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어요. 여사님도 이 부분을 걱정했고 나도 그랬어요. 국회가 해산됐으니 김대중 선배는 국회의원 직을 강제로 박탈당했고 김대중 의원의 비서관이었던 나도 비서관 직을 잃게 됐어요. 그리고 도청당하는 상황에서 일본에 계신 김대중 대통령님과 연락해 긴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모든 것이 암울했어요."
- 워낙 긴급한 상황이다 보니 이희호 여사님과 향후 대책을 논의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때 이희호 여사님께서 나를 포함해 동교동 비서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일본에 계신 홍걸이 아빠(김대중 대통령을 의미)가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고, 박정희 정권이 우리를 향해서 어떻게 할지 알 수 없으니 피해 있으세요.' 그러면서 나를 포함한 비서들에게 개별적으로 5만 원씩을 주셨어요. 그때 여사님께서 참 절박한 심정으로 말씀하셨고 지금도 그 모습이 기억에 생생해요.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희호 여사님은 비서들을 먼저 챙겨주셨어요. 참으로 인품이 훌륭한 분입니다."
- 일본에 계신 김대중 대통령님과는 연락이 안 됐습니까?
"김대중 대통령께서 인편을 통해서 어렵게 연락을 주셨어요. 지금 상황에서 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일본과 미국에서 유신반대와 민주회복 운동을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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