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토론문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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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부부의 각종 범죄와 그 행태를 보면서 한순간 아무래도 인간 본성이 성악설 쪽이 아닌가 하는 근원적인 의문이 들기도 했다. 끝이 없는 욕망과 흑심, 불법과 탈법을 넘나들면서 저지른 범죄와 행동거지는 사람이 저토록 사악하고 추해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기에 모자라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남의 불행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측은지심),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수오지심), 남을 존중하고 공경하는 마음(공경지심), 무엇이 옳고 그른 지를 변별할 줄 아는 마음(시비지심)을 갖고 있다. 줄여서 인·의·예·지의 4단설이다. 짐승과 다른 사람만의 본성이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논쟁사에 속한다. 이와 함께 진화론은 뭇 생물이 외계의 영향과 내부의 발전에 의하여, 간단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 저급한 상태에서 고급한 상태로 그 체제를 바꾸어 발전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이에 맞서 종교계(기독교)는 창조설을 내세운다. 천지간의 모든 생명체는 창조주의 산물이라는 주장이다.

인류의 진보사는 어느 측면에서 논쟁의 역사다. 어떤 사물(사안)을 두고 주장→반박→합의도출 과정 즉 정반합의 변증법이론이다. 논적(論敵)의 주장을 논박하기 위해 상대방의 주장을 전제로 해서 거기서 서로 모순되는 명제를 도출하는 논법을 말한다. 소크라테스를 기원으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을 거쳐 칸트와 헤겔에 의해 발전 정립되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헤겔의 변증법의 관념론적 성격을 비판하면서 유물론적 변증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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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토론과 논쟁다운 논쟁이 없었다.

21대 대통령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의 3차에 걸쳐 진행된 TV토론에 실망하는 국민이 많았다. 이 토론뿐만 아니라 신문·방송에서 여야의 토론은 거의 예외없이 감정적인 저질언어와 근거 없는 폭로성으로 시종된다. 국회청문회도 다르지 않다. 논쟁다운 논쟁과 쟁점이 자리잡지 못한 채 일방적인 주장이나 뜬구름 잡는 식의 공허한 말장난이 난무한다. 걸핏하면 철 지난 색깔론을 편다. 논(論)은 없고 쟁(爭)만 난무하는 모습이다. 윤석열 시대의 '입틀막'이 상징적이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 문화와 전통에서 생겨난 유산이다. '어명'으로 상징되는 긴 왕조시대, 일제강점기 총독부 고시, 분단과 전쟁기에 파생한 이데올로기의 과잉, 군사독재의 계엄령과 포고령, 수직선상의 명령체계인 군사문화, 가부장제 등의 산물로서 토론이나 논쟁보다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구도였다. 학교 교육도 토론보다 암기 위주의 주입식 그대로이다. 어디에서도 토론이나 논쟁이 설 곳이 없고 획일적, 수직선상에서 효율성이 중요시되었다.

원칙을 확인하면서 합리적으로 진행되는 논쟁은 사회의 지적 자원을 풍부하게 늘리는 역할을 하면서 그 사회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낸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데올로기의 과잉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고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대중 선동에 취약하다. '허구로 만든 진실'에 쉽게 미혹되고 이내 냉정함을 잃는다. '정쟁'은 허다하지만 '논쟁'은 없는 까닭이다. (주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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