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 전 쿠바 미사일 위기가 남긴 평화의 교훈

63년 전 오늘, 세계는 핵전쟁의 문턱까지 갔다. 1962년 10월 22일, 미국과 소련의 대치 속에 '쿠바 미사일 위기'가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이다. 이날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소련이 쿠바에 중거리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이라고 밝히며, 전면전을 피하면서도 핵미사일 반입을 차단하기 위한 해상 격리조치를 전격 단행했다. 그는 국제법상 전쟁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봉쇄(Blockade)' 대신 '격리(Quarantine)'라는 표현을 택해 군사적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무력 충돌은 피하려 했다. 절제된 압박을 통해 사태를 통제하고자 한 이 조치는, 케네디 대통령이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는 평화를 위협하는 도발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결의도 분명히 밝혔다.

당시 핵전쟁의 공포는 현실적이었다고 전해진다.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10월 24일, 미국은 제2차대전 이후 최고 수준의 준비태세인 데프콘 2(DEFCON 2)를 전군에 발령했고, 쿠바에 설치할 미사일을 실은 소련 선박들이 미국의 격리선 근처까지 접근하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됐다. 인류의 운명은 핵충돌이라는 위협 아래 백척간두에 서있었다. 당시 미·소 양측이 끝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면 제3차 세계대전이 개시되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극적 타결이 이루어졌다. 케네디의 유화 메시지에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0월 28일 쿠바의 미사일 철거를 지시한 것이다.

이에 미국도 카스트로의 쿠바를 침공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고, 11월 2일 케네디는 해상 격리를 해제했다. 이렇게 핵으로 맞선 초강대국 간 대결은 대화와 타협으로 평화적 종식을 맞았다. 케네디는 전면전 선포 대신 해상 격리를 선택하고 절제된 군사 압박과 협상을 병행하는 전략으로 위기를 관리했는데, 이러한 외교 전략의 성공은 소련으로 하여금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평화를 지향한 케네디의 리더십이 일보 직전의 파국을 기적처럼 봉합한 것이다. 이 역사적 합의의 결과로 이듬해 미·소 정상 간 직통전화인 '핫라인'이 개설되고 부분적 핵실험금지조약까지 체결되는 등, 냉전시대 지속 고조되어 온 핵 긴장이 크게 완화되는 성과로 이어졌다. 케네디의 쿠바 위기 해법은 냉전 시기의 가장 성공적인 외교적 대응 사례로 남아 있다.

63년 후 오늘, 한반도에서 다시 군사적 긴장이 포착되고 있다. 2025년 10월 22일 새벽,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 동해상으로 발사하였다. 이는 지난 5월 이후 현 정부들어 처음 벌어진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공교롭게도 일주일 뒤에는 한국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전 세계 주요 21개국 정상급 인사들이 모이는 국제 행사를 앞두고 벌어진 이 일은, 자칫 한반도 정세를 다시 강대강 대결의 악순환으로 빠뜨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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