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얼굴을 한 정치... 맘다니가 만들 뉴욕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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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새벽은 언제나 분주하다. 수백만 대의 자동차와 사람의 발자국, 전철의 굉음과 커피 냄새가 섞여 도시를 깨운다. 하지만 2025년 11월 5일의 아침은 달랐다. 그날, 뉴욕은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우간다에서 태어나 미국 퀸즈에서 자란 이민자의 아들이자 젊은 사회운동가인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가 뉴욕시의 시장으로 당선된 것이다.

그 이름이 발표되는 순간, 맨해튼의 거리와 브루클린의 카페, 퀸즈의 모스크와 브롱크스의 학교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이제야 진짜 우리를 대표하는 시장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 말 속에는 수십 년 동안 이 도시를 지탱해 온 '보이지 않는 시민들'의 숨결이 담겨 있었다.

경계 너머에서 자란 소년

맘다니의 이야기는 아프리카의 한 도시,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서 시작된다. 그의 아버지 마흐무드 맘다니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인류학자였고, 어머니 미라 나이르는 인도 출신의 영화감독이었다. 그는 지식과 예술의 경계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다양성'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의 이름 '조란'은 '빛'을 뜻하고, 중간 이름 '콰메(Kwame)'는 가나의 초대 총리인 콰메 은크루마에서 따왔다. 이 이름에는 부모가 아들에게 물려주고자 한 세계관, 억압받는 이들의 존엄과 해방의 꿈이 담겨 있었다.

그가 일곱 살이 되던 해, 가족은 뉴욕으로 이주했다. 퀸즈의 다문화 거리에서 자란 그는 매일 세계를 만났다. 옆집은 방글라데시 이민자, 맞은편은 도미니카 가족, 아래층에는 흑인 노인이 살았다. 그들은 서로의 언어를 몰랐지만, 일터로 향하는 새벽 인사만큼은 공유했다.

소년 맘다니는 이 복잡한 도시에서 '정의'를 배웠다. 공립학교에서의 불평등, 친구들의 퇴거 소식, 지하철 요금 때문에 걸어서 학교에 가야 했던 기억 속에서 그는 깨달았다.

'이 도시에는 약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

그는 브롱크스 과학고등학를 졸업한 뒤 메인주의 보든 대학(Bowdoin College)으로 진학해 아프리카학(Africana Studies)을 전공했다. 아프리카와 디아스포라의 역사, 식민주의, 인종 정의를 탐구하면서 미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공부했고, 동시에 행동으로 옮겼다.

맘다니는 재학 중 '팔레스타인 정의 학생회(SJP)'를 조직하며 국제 연대의 의미를 배웠고, 뉴욕의 사회운동 단체들과 교류했다. 그러나 졸업 후 그는 화려한 경력을 택하는 대신 퀸즈로 돌아가 주택 상담사로 일하며 서민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일하던 사무실에는 매일 퇴거 통지를 받은 세입자들이 찾아왔다. 그는 서류를 작성해 주고, 집주인과 협상하며, 법률 상담을 연결했다. '누구나 살 집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그의 신념은 바로 이 현장에서 굳어졌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고통을 이론으로 배우지 않았다. 그것은 내 사무실 문을 두드리던 사람들의 얼굴에서 배운 것이다."

그 경험은 그의 정치 인생의 출발점이 되었다.

거리에서 시작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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