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놓인 경계선지능인... "법적 지위 확보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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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처음으로 '경계선지능인 지원법' 제정을 두고 목소리를 모았다.

17일 열린 입법공청회에서는 정치권과 학계, 현장 모두가 "더는 미뤄선 안 된다"며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생애주기 전반의 공백을 지적했다. 이어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면서도 이들의 기본권을 보장할 최소한의 출발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별도 법 제정의 시급성을 확인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날 오전 경계선지능인 지원법 논의를 위한 공청회를 열고, 복지위 소관으로 발의된 '경계선지능인 지원법' 제정안 7건에 관한 관련 단체와 학계,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이날 공청회는 그동안 교육·고용·복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제도적 공백에 놓여 있던 경계선지능인의 지원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첫 공식 논의로 주목을 받았다.

"경계선지능인이 가장 살기 어려운 나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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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진술인인 배은경 호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계선지능인이 인지적 제약뿐 아니라 교육, 진로, 고용, 자립 등 생애 전반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국민으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조차 갖지 못한 채 정책 사각지대에서 범죄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로 언론에 등장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배 교수는 법률의 목적을 단순 보호가 아니라 '자립 지원'과 '권리 보장 강화'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며 법안 제1조에 이를 명시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향후 범부처 협력이 필수적인 만큼 자립, 사례관리, 개인별지원계획 등 핵심 개념 정의를 폭넓게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 법안에 담긴 '가정의 책임' 조항은 "부모와 가정에 과중한 부담을 전가하는 내용"이라며 삭제를 요구했다. 배 교수는 조기진단과 지원은 반드시 연계돼야 하며, '지원이 없는 진단'은 낙인만 낳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아동복지시설·가정위탁 등 가정외 보호 아동·청소년에 대한 의무적·우선적 진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계선지능인의 특성상 성과 중심 지원방식으로는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장기적 관점의 사례관리 체계 구축과 종합지원센터 시범사업 도입을 제안했다.

송연숙 사단법인 느린학습자시민회 이사장은 "현장에서 활동하며 '경계선지능인은 실존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다"며 "국가가 맡아야하는 국민의 실존을 시민단체가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 이사장은 법 제정을 통해 경계선지능인의 법적 지위와 제도적 보호근거를 마련해야 정책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송 이사장은 경계선지능인의 규모는 최소 3.6%에서 최대 13.59%로 추산되며, 병역판정검사에서도 매년 입영대상자의 0.5%가 경계선지능인으로 선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은 교육·고용·복지 어디에도 지원대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아, 학령기 이후 성인기·중장년기에 접어들수록 고립·빈곤·고용실패·보호자 부담이 심화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비경활인구로 고착된 고립청년 중 경계선지능인의 비율은 40~5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세상에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며 "제발 우리를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달라"고 법적 지위 확보의 절실함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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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한신대 연구교수는 "전 세계에서 경계선지능인이 가장 살기 어려운 곳은 한국"이라고 진단했다. 경쟁 중심 사회, 4차 산업혁명 등 한국의 상황에서 장애·비장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선지능인의 삶은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각 지자체에서 조례가 100곳 넘게 제정됐지만 예산까지 편성한 곳은 절반 수준, 그마저 대부분 학령기 중심이라 성인기 지원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적절한 진단과 발굴에 실패한 취약계층 경계선지능인은 철저하게 배제된다"며 생애주기 내 전환기마다 반복되는 단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의 통합 지원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성인기 자립지원 부재로 인해 부모가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다가 죽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부담이 극심하며, 은둔고립청년·중장년 고독사·미혼모 문제 등 사회문제와도 깊게 중첩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복지지원은 한국 사회 여러 난제를 풀어낼 실마리"라며 평생토록 지속되는 이들의 어려움을 풀기 위해 복합적, 다면적인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윤경 한국공학대 연구교수는 "경계선지능인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제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9월 복지위 법안심사제2소위원회에서 주로 언급됐던 경계선지능인의 정의 문제를 짚었다. 최 교수는 "DSM-5는 진단 기준을 지능 중심에서 적응기능 중심으로 전환했다"면서도 "이 변화는 경계선지능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능지수 하나로 포착되지 않는 지원 필요군을 더 정확히 발견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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