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택, 험난한 세상에 궂은일 도맡은 살림꾼

1991년은 '죽음의 해'였다. 4월 26일 명지대학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전투경찰에게 구타 당해 숨진 것을 시작으로 5월 한 달 동안 무려 8명의 학생과 노동자가 제 몸을 불살라 민주 제단에 바쳤다. 전두환을 계승한 노태우 정권에 대한 처절한 투쟁이었다.

4월 29일 전남대생 박승희, 5월 1일 안동대생 김영균, 5월 3일 경원대생 천세용. 하루가 멀다 하고 분신 항거가 이어지고 5월 8일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의 분신이 이어졌다.

노태우 정권은 이 사태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이들의 잇단 분신은 누군가의 계획에 의해 벌어졌을 것이라는 흑색선전을 해대더니 끝내 김기설에게서 그 증거가 드러났다고 했다. 김기설이 남긴 유서가 그의 필적이 아니라 누군가가 대신 써준 것이라는 해괴한 주장이었다. 그리고 그 대필자로는 김기설의 선배 강기훈이 지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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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한 김기설 유서에 등장한 김선택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김기설이 존경하던 선배였던 김선택이 김기설의 유서에 이름이 오르면서 시작되었다.

1991년 5월 7일 김기설이 분신자살하기 전날 저녁, 김선택은 여의도 형님 댁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가 있어서 옷이라도 갈아입으려고 오랫만에 집에 들어왔다. 선택은 전민련 사무처장 대행으로 연세대에서 강경대 사건 범국민대책회의 뒤치닥거리를 하느라 근 열흘째 집을 비우고 있던 차였다.

집에 들어서자 전민련 실무자로 있는 후배 임무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기설이가 이상해요." 전민련 사회부장으로 있는 김기설이 여자 친구에게 분신하겠다는 얘기를 해서 지금 임근재, 이도레가 대학로에서 기설이를 붙들고 만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선택이 놀라 "그럼 내가 나갈까?" 물었더니 임무영이 지금은 대체로 상황이 정리된 것 같으니 안 나와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선택은 안심을 하고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집을 나오는데 덩치가 우람한 형사 세 명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함께 가자고 했다. 그래서 웬일이냐고 물으니 김기설이 분신했다는 것이었다. 김선택은 자신이 피의자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기 전에 우선 연세대로 갑시다"라고 버텼다.

연세대 강경대 대책위 상황실에 가서 사태를 파악해 보니 김기설이 서강대에서 분신·투신해서 온통 난리가 나 있었다. 김기설의 유서에 김선택의 이름이 나오고 그래서 경찰들이 자기를 찾았다는 것도 알았다. 함께 온 경찰들에게는 나중에 필요하면 참고인 조사에 응하겠다고 얘기하고 돌려보냈다. 그리고 오후에 시간을 내 서강대에 가서 기설이 투신했다는 자리를 살펴보았다. 아직도 선홍색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김기설은 노태우 정권 퇴진과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위해 제 몸을 던졌다. 김선택은 우선 기설의 장례를 잘 치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범국민대책위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쪽으로 추진했는데, 공론이 모아지지 않았다. 선택은 차선책으로 인재근, 장준영, 최규성 등 민청련 선배들과 의논하여 전민련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평민련(재야 출신 민주당 입당자 단체)의 도움을 받아 차와 엠프를 지원 받고, 850만 원 모금도 해서 기설의 장례를 무사히 치렀다. 5월 12일 기설의 유해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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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유서대필사건과 명동성당 농성

그러나 기설의 장례 직후부터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김기설의 분신 직후 그날 오전 10시경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검찰총장 정구영, 법무부장관 김기춘 등 치안관계 대책회의가 열렸고, 회의 직후 검찰총장 정구영은 산하 검찰에 분신자살 배후를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이 지시를 받아 서울지검장 전재기는 사건을 강력부에 배치 강신욱 부장검사를 반장으로 한 다섯 명의 검사로 전담조사반을 구성했다. 김기설이 분신한 날 박홍 서강대 총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분신의 배후에 '죽음을 선동 이용하는 반생명적 세력'이 있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김기설의 분신이 있기 사흘 전 김지하가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우라'는 제목의 민주화운동권을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이런 김지하와 박홍의 발언은 검찰의 조사 착수를 응원하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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