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는 군 통수권자의 명령에 따라 언제든 군이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발 빠르게 움직인 국회가 계엄해제 요구안을 통과시키면서 내란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지만, 그날 밤 한국 사회는 한순간에 과거 군부 통치 시절로 퇴행할 수 있다는 취약성을 드러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꼭 한 해전인 2023년 겨울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은 군부 통치를 경험해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도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극중에서 군사반란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군인들의 모습은 역사 속 실존인물들이 재조명 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배우 정해인씨가 연기한 오진호 소령의 최후 장면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극중 오 소령의 모티브가 된 고 김오랑 육군 중령(전사당시 소령, 1990년 추서)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지난 8월 법원은 김 중령의 누나 김쾌평씨등 유가족 10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법무부가 항소를 포기하면서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항소 포기와 관련해 "김 중령의 고결한 군인 정신은 지난겨울 12.3 불법 비상계엄에 저항한 군인들과 시민들의 용기로 이어졌다"면서 "오늘날 다시 꽃 피우고 있는 강인하고 위대한 'K-민주주의'의 토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최근 김 중령 유가족들은 배상금 중 1500만 원을 김준철 대한군인기념사업회장(예비역 육군대위·학군28기)에게 전달했다. 김오랑 중령 동상을 육군사관학교(육사) 교정에 세우는 데 마중물로 써달라는 뜻이었다.
<오마이뉴스>와 만난 김준철 회장은 "이미 19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고 김오랑 중령 무공훈장 추서 및 추모비 건립 촉구 결의안'에는 육사 교내에 김 중령 추모비나 기념비를 세울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면서 "동상을 세우는 데 따로 비용을 모금해야 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 중령 일대기를 조명한 평전 <역사의 하늘에 뜬 별, 김오랑>을 집필하기도 한 김 회장은 지난 20여 년 동안 고인의 기념사업을 꾸준히 펼쳐오고 있다. 17대 국회부터 김 회장은 '참군인 김오랑 중령 무공훈장 및 추모비 건립 촉구 결의안'을 작성해 국회와 국방부의 문을 계속 두드려왔다.
그는 국방부와 육사, 특전사령부가 아직도 김 중령 추모비 건립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작심 비판했다.
김 회장은 아울러 "19대 국회 결의안은 고인이 군사반란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반란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실을 명시하면서 무공훈장 추서를 촉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4년 고인에게 보국훈장이 추서되기는 했지만, 무공훈장으로 훈격을 높여서 다시 수여해야한다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그는 지난 2022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위원회)가 김 중령 사망 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정정한 사실을 들었다. 반란으로 집권한 신군부는 김 중령이 선제사격을 가해 반란군이 정당방위 차원에서 대응하는 과정에서 김 중령이 숨진 것이라고 사인을 왜곡했다. 하지만 사건을 재조사한 위원회는 반란군이 총기를 난사하면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려 했고, 김 중령이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교전이 발생해 김 중령이 피살된 것으로 결론 내렸다.
따라서 안보 전반에 대한 기여를 중심으로 수여되는 보국훈장 보다 직접적 전투나 전시에 뛰어난 용맹함을 보인 군인에게 수여되는 무공훈장이 고인의 희생에 더 적절하다는 게 김 회장 설명이다.
김 회장은 우리 사회가 역사를 똑바로 직시하지 않으면 비극은 언제든 되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김 중령 흉상이 육사 내에 세워져 있었다면 12.3 비상계엄 사태 때 육사 출신 사령관들이 그렇게 쉽게 불법행위에 동조할 수 있었겠느냐"고 일갈했다.
다음은 지난 14일 김 회장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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