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함으로 불이행" 계엄 상황서 용기 낸 제주 경찰서장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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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6·25전쟁) 발발 2개월 뒤인 1950년 8월 30일, 제주도 동북 해안 쪽의 성산포경찰서장은 해병대 정보참모의 명령서를 받았다. '반국가세력'인 예비검속 대상자들을 총살한 뒤에 보고하라는 내용이었다.

개전 사흘 뒤인 6월 28일, 북한군은 한강철교와 한강인도교를 폭파했다. 하지만, 독립군 출신인 김홍일 장군이 한강 이북의 패잔병들을 모아 강 남쪽에서 저항하는 바람에 북한군은 7월 3일에야 한강을 넘었다. 이 때문에 시간을 번 미군 제24사단은 7월 2일 평택·안성에 진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미군이 평택·안성 방어선을 사흘도 지키지 못해 6일에는 이 라인이 뚫렸다.

경찰서장이 된 독립운동가, 주민들을 살리다

이런 상황에서 7월 8일에 전라남도·전라북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전남 소속이었던 제주도(島)는 1946년 8월 1일 제주도(道)로 승격됐기에 이 비상계엄의 적용을 받게 됐다. 성산포경찰서장이 국군의 지시를 받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지시는 거부하기 힘든 것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정권을 반대하는 이들을 '블랙리스트'로 분류했다. 그는 전쟁이 발발하자 이들부터 처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성산포서장이 받은 것은 그런 명령이었다. 53세인 이 경찰서장은 '예비검속자 총살집행 의뢰의 건'이라고 적힌 공문서 상단에 메모를 했다. "부당함으로 불이행"이라는 문구다. 명령을 거부하겠다고 적어넣었던 것이다.

용감한 메모의 주인공은 김홍일처럼 임시정부 한국광복군을 거친 문형순이다. 경찰청이 발행한 <대한민국 경찰정신의 표상: 참경찰 인물열전 2021>은 그의 프로필을 이렇게 정리한다.

"1897년 2월 7일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문형순은 문시영·이도일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1908년 4월 안주에 있던 대성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3월 서간도지역 독립군 양성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1920년 9월 한국의용군에 편입되어 시베리아지역으로 이동하였다. 1921년 한국의용군이 고려혁명군으로 재편되자 군 교관으로 복무 후 1929년 5월 만주에 있던 국민부의 중앙호위대장을 지냈다. 광복 직전인 1945년 8월에는 중경 임시정부 광복군에 입대하여 주로 화북지역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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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 때부터 독립운동에 헌신해온 인물이 전쟁 중의 내란행위과 다를 바 없는 일에 동조할 리 없었다. 그는 명령서 작성에 사용된 펜보다 훨씬 두꺼운 펜을 들어 "성산포경찰서장 귀하" 바로 위에 "부당함으로 불이행"을 써넣었다. 불이행(不履行)의 행(行)은 아래로 쭉 그어졌다. 불법 명령을 거부한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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