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청련두꺼비 열전]
김선택, 험난한 세상에 궂은일 도맡은 살림꾼(https://omn.kr/2g338)에서 이어집니다.
김선택은 1954년 충남 논산시 은진면 성덕리에서 부친 김광순과 모친 박이순 사이에서 12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났다. 모친 박이순은 12남매를 낳아 단 한 명도 잃지 않고 모두 건강히 키워냈다.
김선택은 세상을 떠난 큰누나와 거의 20년의 나이 차이가 났으며, 어린 시절 대부분을 누나의 보살핌 속에서 보냈다. 그는 큰누나를 어머니처럼 따랐고, 누나는 어린 선택을 맡아 키우다시피 했다.
우수 모범생이 골수 운동권으로선택은 늦둥이 막내라 부모님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자랐다. 누나와 형들도 선택을 유난히 아꼈다. 그는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뒤 서울로 올라와 성동중학교에 진학했다. 당시에는 고등학교도 입시를 치러야 했는데, 선택은 서울의 명문인 서울고등학교에 지원해 합격했다. 이후 서강대 경상계열에도 무난히 입학했다.
서강대는 가톨릭이 운영하는 학교로 학생 수가 적어 가족 같은 분위기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1974년 선택이 입학한 직후 4월, 민청학련 사건이 발생하면서 분위기는 순식간에 살벌해졌다. 형사들이 학교에 상주하며 학생들의 동태를 감시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나 사회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던 신입생 선택에게 이런 긴장감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는 술집의 낭만을 즐기며 대학생활을 즐겼다. 서강대 도서관이 완전 개가식이었던 점도 마음에 들었다. 원하는 책을 마음껏 골라 볼 수 있어 선택은 시간이 나면 도서관에 머물며 책 속에 파묻혀 지냈다.
2학년이 되어 과 배정을 받을 때, 선택은 경제학과를 선택했다. 이것이 그의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이 되었다. 경제학과에 진학 후 운동권 선배들을 만나면서 선택은 부조리한 정치 현실에 눈뜨기 시작했다. 그는 박석률(민청학련·남민전 사건으로 투옥, 2017년 작고), 권오성(수도교회 담임목사 역임) 등이 주도한 비밀 스터디 그룹에도 참여했다.
선택의 삶을 결정짓는 또 다른 계기는 교회 활동이었다. 처음에는 학생운동을 하는 청년들이 많던 새문안교회를 다녔고, 뒤이어 보다 운동권 색채가 짙은 형제교회로 옮겼다.
형제교회는 서울 장춘단공원 언덕배기에 위치한 교회로, 훗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총무를 지낸 김동완 목사가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었다. 선택은 이곳에서 평생의 동지가 될 장준영(성균관대 73)을 처음 만났다.
그 밖에도 민인기(서울대 72), 조성우(고려대 75), 임은빈(서울대 간호학과), 김정호(감신대) 등 여러 대학의 쟁쟁한 운동권 인물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는 선택의 인생행로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운동하려면 공부부터1970년대는 박정희의 국가주도형 산업화로 농촌이 황폐화되던 시기였다. 형제교회 모임에서는 주로 농업 문제를 연구했다. 농업경제론과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을 함께 읽고, 일본에서 출간된 마르크스 원전을 일어로 공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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