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꼽힌다. 한창 아이를 낳아야 할 젊은 세대가 결혼도 아이 낳기도 꺼려서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1명 밑으로 떨어진 게 벌써 2018년(0.98명)이고, 1994년 72만 명이던 출생아 수는 30년이 흐른 지난해 24만 명으로 줄었다. 30년 만에 정확히 3분의 1로 떨어진 것.
2023년 12월 2일 <뉴욕타임스>엔 '한국은 사라지고 있는가'란 섬뜩한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칼럼은 우리나라의 이상하리만치 낮은 출산율이 가져올 가파른 인구 감소를 14세기 유럽 전체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던 흑사병에 빗댔다. 흑사병으로 많게는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 인구는 앞으로 50년도 채 안 돼 3622만 명(2072년)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통계청, 장래인구추계, 2023.12). 그렇게 되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7.7%를 차지하게 되고, 중위연령은 무려 63.4세가 된다. 전체 인구를 한 줄로 세웠을 때 한 가운데 서게 되는 사람의 나이가 그렇다는 뜻이다. 1994년엔 그 한 가운데에 스물아홉 살 청년이 서 있었다.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먹여 살려야 할 고령인구가 104명으로 늘면서 1명이 1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꼴이 된다. 2000년엔 100명이 10명을, 2022년엔 22명을 먹여 살렸으니, 50년 만에 짊어져야 할 무게가 다섯 배 가까이 늘어나는 셈이다.
오죽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달, '한국의 태어나지 않은 미래 : 저출산 추세의 이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우리나라는 이해하기 힘든 나라가 된 지 오래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낮은 출생률의 이유를 높은 주거비와 사교육비 그리고 이중 노동 구조(정규직-비정규직)와 여성의 경력 단절 등에서 찾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서울·수도권으로 사람들이, 특히 젊은 세대가 끊임없이 몰려드는 흐름을 빼놓고선 이 이해하기 힘든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물론 여러 이유가 서로 물고 물리면서 복잡하게 얽혀있다). 전체 국토 너비의 11.8%밖에 안 되는 서울·수도권 인구는 2606만여 명(2025.3)으로 전체 인구의 50.4%다. 정확히 50%를 넘어선 건 2019년 무렵이지만, 절반 가까운 인구가 좁은 땅에서 부대끼며 산 건 꽤 오래된 일이다. 그러니 모든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연스레 늘 모자란 집의 값어치는 오르고 남아도는 사람의 값어치는 떨어진다. 살아남으려면 더 많은 돈을 써가면서 나를 돋보이게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청년들에게 비슷한 처지의 짝을 만나 아이를 낳는 일은 두고두고 큰돈이 들어가야 하는 아주 값비싼 선택으로 남게 된다.
그래서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벌써 몇 년째 전국 평균보다 한참 낮은 0.5명대에 머물고 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를 두고, 만약 '서울'이라는 인간종이 있다면 "멸절의 길"로 들어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서울은 지금 멸절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해묵은 '행정수도론'은 답이 될 수 없다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닥치면서 선거에 뛰어들려는 후보들은 굵직한 공약을 내놓기에 바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이 그리는 대한민국의 미래에서 '저출생'과 이른바 '지방 소멸'이라는 절망의 그림자를 걷어낼 고심의 흔적을 찾아보긴 어렵다. 해묵은 '행정수도론'이나 '혁신도시론'을 다시 꺼내 드는 건 결코 좋은 답이 될 수 없다.
노무현 정부(2003~2008)는 우리나라의 모든 지역을 고르게 키워야 한다며 곳곳에 '성장 거점'을 마련하는 전략을 폈다. 안타깝게도 위헌으로 결론이 났지만, 세종시를 만들어 행정수도를 옮기려고도 했다. 최근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재명 후보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들이 앞다퉈 이른바 '행정수도론'을 다시 꺼내 들었지만, 어렵게 위헌이라는 벽을 넘어선다고 해도 그런다고 힘을 잃어가는 지역이 되살아날 것 같지는 않다.
153개에 달하는 공공기관을 비롯해 연구소와 대학이 어우러진 지역 거점이 될 거라던 전국 10곳의 '혁신도시'들도 벌써 조성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기대했던 성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2021년 기준으로 이들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기대만큼 인구를 끌어모은 곳은 부산과 전북 두 곳뿐이었다. 그나마 2014~2016년 사이엔 수도권에서 혁신도시들로 인구 순유입이 있었지만 얼마 못 가 2018년부턴 다시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순유출이 더 커졌다(한국개발연구원,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효과 및 정책방향, 2021).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만든 거점들이 정말 '거점'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가다. 다시 말해, 서울·수도권에서 데려온 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과 10조 원 넘게 들여 만든 여러 도시 자원들이 새로운 동력이 되고 그렇게 뿜어 올린 힘이 거점 밖으로 흘러넘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선 '메가시티' 구상도 크게 다를 게 없다.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광주·전남 등 여러 광역권을 하나로 묶어 서울·수도권에 견줄 만큼 덩치를 키우고, 하나의 생활권·경제권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교통망을 촘촘하게 깔자는 건데, 역시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힘이 어디까지 퍼져나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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