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으로 날아온 붉은가슴기러기, 이건 하나의 '전조'다

붉은가슴기러기(Branta ruficollis)는 몸길이 54~60cm 남짓으로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위태로운 새 중 하나다. 흑기러기보다 작고, 목이 짧으며, 부리는 앙증맞을 정도로 짧다. 그러나 그 몸에 새겨진 색의 대비는 단호하다. 머리와 등은 검은빛으로 단정하고, 얼굴에는 하얀 띠가 둥글게 감싸며, 목과 가슴에는 불타오르는 듯한 적갈색 띠가 넓게 둘러 있다. 이 붉은 띠가 바로 이 새의 이름이자, 그 생명의 표식이다.

붉은가슴기러기는 북서 시베리아의 타이미르반도와 얀타이 지역의 툰드라에서 번식한다. 6월, 해빙이 시작되고 이끼와 자작나무 관목이 녹색으로 변할 때, 이 새들은 툰드라의 작은 하천과 연못 주변에 둥지를 튼다. 주변에는 북극여우와 도요새 같은 이 지역의 상징적인 생명들이 함께 살아간다. 붉은가슴기러기의 둥지는 보통 눈이 녹은 물웅덩이 근처의 맞은편 풀밭에 만들어지며, 새끼들은 40여 일 만에 하늘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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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북극의 여름은 짧고, 빠르게 끝난다. 8월이면 이미 얼음의 그림자가 내려앉고, 새들은 긴 여정을 준비한다. 그들은 시베리아의 툰드라에서 출발해, 우랄산맥을 넘고, 카스피해를 따라 내려와 흑해 북부와 발칸반도, 이란, 이라크, 터키로 향한다. 그중 일부는 유럽 남부로, 또 일부는 아시아의 내륙으로 흩어진다. 그 긴 여정의 도중에, 아주 드물게 한반도 남서부의 습지, 바로 천수만을 찾는 개체가 있다.

한국에서의 붉은가슴기러기는 12년이 첫 관찰이었다. 2012년 10월 21일, 충남 천수만 간월호에서 처음 1개체가 관찰되었고, 2021년 10월 11일 다시 서산시 천수만 농경지에서 1개체가 확인되었다. 그 후 몇몇 지역에서 관찰 소식이 있었다. 그리고 2025년 3월, 천수만에서 다시 붉은가슴기러기가 포착된 것이다. 그리고 10월, 강화 교동도와 천수만에서 잇따라 확인되었다. 이 종의 동아시아 이동경로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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