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 되고 다시 개헌론이 떠올랐다. 시대가 달라진 만큼 87체제를 끝내고 7공화국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개헌론이 나온 지 어느덧 20년 넘은 것 같다. 그러나 개헌론은 대부분 권력 구조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게 맞을까?
현재 정치권의 개헌론에 대해 헌법학자는 어떻게 보는지 들어보고자 지난 25일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한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대통령이 폭정 휘둘러도 국민들 방법 없어, 현행 헌법의 한계"-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조기 대선과 맞물리면서 개헌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떻게 보세요?
"개헌의 적기인 것은 분명합니다. 87년 헌법은 너무 오래되어서 새로운 시대 과제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합니다. 특히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들을 제대로 구현하지도 못 하는 한계도 있습니다. 예컨대 87년 헌법은 철저한 대의제 체제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대표자를 선출하고 이 대표자들이 국정 운영을 도맡아 하는 체제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번 내란 사태처럼 무도한 대통령이 폭정을 휘둘러도 국민들은 손을 놓고 어찌 할 방법 없는 상황으로 됩니다.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길거리에 나와서 저항하는 거죠. 이런 상황이 현행 헌법의 가장 큰 한계가 되어 있습니다."
- 하지만 이번 계엄은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거라서 헌법재판소가 법에 따라 파면한 것이기 때문에 헌법적인 문제는 없지 않나요?
"헌법은 분명 제대로 작동했습니다. 다만 그때의 헌법은 국민들의 의지와 능력 바깥에서 작동한 것이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국회가 탄핵소추하고 헌재에서 탄핵 심판 과정을 거쳐 파면 결정이 내려지기까지의 긴 시간 동안 국민들이 참여하여 숙의하고 결정을 하고 그에 따라 헌법이 작동하는, 그 어떤 절차도 없었습니다. 국민들은 철저하게 타자화 되어 버리고, 국회와 헌법재판소와 같은 대의기관에만 의존해서 헌정 질서가 유지되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현행 헌법은 극심한 한계상황에 부딪히게 됩니다."
- 그건 대의제 민주주의를 택하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요?
"사실 그 대의제 민주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보면 지난 세기의 말엽부터 전성기를 끝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최근의 헌법 체제들은 대부분 직접 민주제 내지는 시민참여에 의한 정책 과정들을 적극적으로 편입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대의제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제의 수준이 아니라 대의제와 함께 국민들의 정책 과정이 병행하는 방식의 국가 운영체제가 구성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에는 이런 추세와 너무도 동떨어져 있습니다."
- 5000만 명인데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한가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3억 4000만이나 되는 미국의 경우에도 각 주별로 주민발안이나 주민투표가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전체로 본다면 5000만이지만 지방분권의 형식으로 나누어서 보면 1000만일 수도 있고 400만일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2만이나 또는 몇천, 몇백 명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권력을 국가 중심으로 구성한다면 5000만 인구는 움직이기 어려운 덩어리에 불과해지지만, 시민사회나 지방정부 등으로 그 결정이나 숙의의 과정을 다원화, 다층화하게 되면 크게 문제 없어집니다. 개헌은 그런 체제를 구성하는 작업이 핵심을 이루어야 합니다."
- 개헌에서 나오는 게 권력구조를 어떻게 할지잖아요. 아니면 전문에 뭘 넣을지죠. 이게 중요할까요?
"권력구조의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권력구조니, 대통령의 임기제니 하는 것들은 헌법사항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국가와 시민사회, 시민 간의 권력 배분입니다. 헌법을 개정한다면 국가에 집중적으로 편제되어 있는 권력을 시민사회와 시민들에게 돌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하고 정치적 참여의 기회와 그 역량을 대폭 확장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에 이어 지방분권의 체제를 제대로 만들어 지역의 문제는 지역이 알아서 처리하는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 그러면 왜 그런 건 얘기 안 하고 오직 권력 구조만 얘기할까요?
"헌법개정의 절차와 과정이 우리 시민들에게 열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의 일상이나 삶의 문제, 혹은 지역 정치의 문제 등을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이지요.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권력인 만큼 이 권력을 어떻게 나눠 가질 것인가에만 신경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헌법개정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민주적인 역량을 어떻게 강화하고 어떻게 국민을 정치의 중심에 갖다 놓을 것인가 등을 고민하는 일입니다."
- 그 부분에서 가장 첫 번째는 뭐가 돼야 하는 건가요?
"순서를 따지기는 어렵습니다만, 우선 헌법 개정 과정을 정치인들이 독점할 것이 아니라 시민들 모두에게 적극적으로 개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시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헌법 개정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직접 민주제적인 요소들을 헌법에 대폭 수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국민발안이나 국민투표, 국민소환 등의 제도뿐 아니라 시민의회라든지 시민 배심, 시민포럼 등과 같이 전국 단위든 지역 단위든 모든 층위에서 시민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힘들을 헌법에 도입해 두는 것이 개헌의 중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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