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6살에 한국으로 온 시리아인 데이비드(가명)입니다.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살인과 학살, 강제 징집, 억압적인 독재정권의 탄압으로부터 도망쳐 왔습니다. 저는 안전하게 살고 싶었던, 인생과 삶의 어려움을 잘 몰랐던 젊은이였습니다. 저는 한국 정부나 누구에게도 돈이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당시 미성년이었던 저는 시리아에서 가져온 아주 작은 돈으로 2년 반 동안 스스로를 부양하며 힘든 세월을 혼자 보냈습니다. 일할 수 있는 법적 나이인 19살이 되자마자 일자리를 찾아 나섰고, 한국인이 잘 하지 않는, 힘든 일이나 기피하는 일을 찾아다녔습니다.
자동차 부품을 분해해 전 세계로 배송하는 외국계 회사에서 1년 동안 일했습니다. 월급은 200만 원이었고, 매달 약 140만 원(미화 약 1000달러)을 아버지, 어머니, 자매, 남동생에게 보내 식비, 집세, 생활비를 지원했습니다. 아버지는 전쟁에서 입게 된 무릎 부상 때문에 일할 수 없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집이 완전히 파괴되었던 일, 독재정권과 혁명군의 교전 중 화학무기 공격으로 거의 죽을 뻔했던 일, 밤마다 집을 떠나 숲에 숨어 지냈던 일 등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저와 자매들, 어머니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어머니는 우리를 걱정하다 건강이 많이 나빠졌습니다. 이제 10년이 지나 형제자매와 어머니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너무 그립습니다.
반복되는 비자발급의 거부2015년 한국에 올 때 저에게는 3년 전 이미 약혼한 반려자가 있었고, 한국에 온 지 3년쯤 지나고 두바이로 가서 정식으로 아내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두바이에서 약 두 달 반 동안 아내와 함께 있다가 비자가 만료돼 저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아내는 시리아로 돌아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시리아에는 제 아내와 제가 얼굴도 보지 못한 채 4살이 된 아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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