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21세기 혁명의 새로운 도구다."
베네수엘라 혁명을 이끌었던 우고 차베스의 말로 알려진 이 말(김병권 외,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 시대의창, 2007, 392면)은, 지난 세기말부터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었던 헌법개정의 흐름을 가장 적실히 대변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되찾기 위해(동구권),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동아시아×동남아시아, 아랍권) 혹은 민생의 복구를 위하여(라틴아메리카) 세계인들은 헌법을 바꿈으로써 새 세상을 만들고자 하였다.
과거처럼 정치적 쟁투의 결과를 확인하고 선언하는 문서로서의 헌법이 아니라, 낡은 질서를 혁파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일궈내고자 하는 국민들의 의지와 다짐을 담은 사회개혁의 프로그램으로서의 헌법이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기본권을 보장하면서 그 실현수단 또한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한편, 권력의 중심을 정치엘리트들에서 시민으로 이전하여 정치가 일상화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지방분권이나 권력의 분점 또한 대세를 이루었다.
우리의 현행 헌법(87년헌법)은 그 시기의 초입에 자리하였다. 하지만 그 1987년은 너무 빨랐다. 신군부와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의 타협으로 마련되었던 87년 헌법은 여전히 대의제에 고착된 48년헌법체제를 벗어나지 못한 채 그들만의 리그만 그려내었다. 모든 권력은 국가영역에만 집중되었고, 그조차도 대부분 대통령에게 할당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로의 길을 열었다.
그나마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헌법이 국가 운영의 기본틀로 자리잡게 되기는 하였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선언하는 궁극적인 권한은 헌법재판소의 사법관료들이 전유하였다. 지방의회가 설치되고 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되었지만, 여전히 주민자치권은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정부가 아니라 법률상의 법인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내란 앞에서도 무력했던 국민최근의 사태만 보아도 그렇다. 윤석열이라는 무도한 대통령이 폭력적인 비상계엄을 내세운 내란행위를 자행해도 우리 국민들이 헌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었다.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 의결을 기다려야 했고, 대통령의 계엄해제 조치가 있고 나서야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이승만 대통령이 국회의 계엄해제요구를 거부한 헌정사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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