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김희숙과 서둘러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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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와 김희숙은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사제 사이를 뛰어넘어 연모의 정이 쌓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김희숙의 집안에 변화가 생겼다. 생계의 수단이던 하숙을 못하게 되면서 생활이 더 어려워지고, 김희숙은 배우던 학업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장준하와 김용묵이 일본으로 떠나게 되면서 하숙생을 다시 받지 못하였다. 김희숙의 밑으로 여동생만 두 명이 있는 집에서 신상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받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활이 어려워지고 김희숙은 다니던 학교를 중퇴하게 되었다.

이 즈음에 조선에서는 젊은 여성들을 일본군위안부와 일본에 있는 공장으로 끌어갔다. 징용·징병제가 실시되면서 젊은 여성들도 마구잡이식으로 끌어갔다. 김희숙의 집은 부친의 중국 망명으로 일본군위안부에 끌려갈 공산이 가장 높았다.

장준하는 이와 같은 사정이 담긴 김희숙의 편지를 받고 입대를 결심하였다. 그리고 귀국을 단행하고 결혼을 서둘렀다. 입대하기 전에 결혼을 하는 것이 김희숙을 보호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일제는 결혼한 여성까지는 끌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장준하는 아직은 귀밑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김희숙과 결혼을 하기로 작심하였다. 그것이 한 조선의 여성을 구하는 길이라고 믿었고,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싹트게 된 사랑의 결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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