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와 디지털 플랫폼 산업은 한국의 미래 성장 동력이다. 하지만 지금, 이 산업들이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통상 압력과 '안보' 명분을 앞세운 규범 경쟁이 그 배경이다. 특히 미국의 디지털 보호무역주의적 조치는 우려할 만한 흐름이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자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입법 시도마저 제약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의 정책 자율성뿐 아니라, K-콘텐츠를 비롯한 창작물의 문화적 주권과 디지털 주권 전반이 본질적인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대표적 사례는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아래 '플랫폼법안')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의한 이 법안은 대형 플랫폼의 불공정 행위를 막고 입점업체와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글로벌 빅테크가 강하게 반발했고, 국회 논의는 중단됐다. 결국 법안은 무산됐고, 플랫폼 이용자들과 창작자들은 제도적 보호 없이 시장에 노출된 상태다.
반면 미국은 자국 내 중국 플랫폼을 견제하며 '틱톡 금지법'을 통과시키는 등 외국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서슴지 않았다. 한국은 자국 플랫폼 생태계의 불공정을 바로잡기 위한 법안조차 제정하지 못한 것이다. 국내 기업의 반대도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미국이 동맹국의 입법 과정에 이례적으로 깊이 개입했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 무역대표부(USTR)은 법안 내용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며 비판했고, 글로벌 기술기업들도 조직적인 반대 의견을 쏟아냈다. 미국이 동맹국의 자율적 입법에 이처럼 노골적인 견제를 가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입장 표명을 넘어, 법안 폐기를 사실상 유도한 조치로 평가된다.
특히 주목할 인물은 제이미슨 그리어다. 그는 바이든 정부 당시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서 비서실장으로 활동하며, 공정위의 플랫폼법안을 공개 비판했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무역대표부 대표로 임명되며, 해당 입장을 그대로 2025년 무역장벽보고서(NTE)에 반영했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의 플랫폼법안은 처음으로 '무역장벽'으로 지목됐다. 한 나라의 입법 시도가 외국 정부의 무역장벽 리스트에 포함된 것이다. 그것도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경쟁국이 아니라, 안보와 경제를 공유하는 '동맹국' 한국을 대상으로 말이다. 이는 유례없는 일이자, 한국 정책 주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해당 법안은 국회 논의가 중단되며 무산됐고, 소상공인과 콘텐츠 창작자, 이용자들은 지금도 제도적 보호 장치 없이 시장에 내몰려 있다.
문제의 본질은 정책 자율성의 위축한국은 지금 딜레마에 처해 있다. 다른 나라들처럼 자국 플랫폼을 육성하기 위한 외국 빅테크 규제 법안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빅테크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도 전에, 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보고, 미국의 정책 로비를 먼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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