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출마 국회의원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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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독재에 야권은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야권은 1967년 5월에 예정된 제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 해 2월7일 신한당과 민중당이 통합하여 신민당을 창당했다. 야당의 분열 상태로는 박정희 후보를 꺾기 어렵다는 국민의 여론때문이었다. 그런데 차기 대통령 후보에 누구를 내세우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이고 선거 결과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당시 야권에서는 윤보선·이범석·허정·백낙준·유진오 등이 자천타천으로 후보군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장준하는 측근들과 상의하여 후보단일화 작업에 나섰다. '4자회담'을 은밀히 주선한 것이다.

"야권에서 '4자회담'이 있었지요. 이것을 뒤에서 사상계가 주선을 했어요. 백낙준·이범석·윤보선·유진오 등 지도자들이 만나게 되었지요. 이분들이 모이게 설득작업을 각각 분담해서 맡았는데, 백낙준씨는 장선생이 맡았고, 윤보선씨는 제가 (지명관) 맡았고, 유진오씨는 부완혁씨가 맡았을 거예요. 그리고 유창순씨가 이범석씨를 맡았어요. 이분들이 매일 저녁 모여서 상의해가지고 가서 설득작업을 벌였던 것이지요. 그래가지고 성사가 되었는데,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해냈지요."(지명관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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