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부터 냉장고까지, 살림 마련해준 이웃들... 열광의 혼인잔치

IE003493576_STD.jpg

올해로 10년 차 연인, 버들과 승현은 이제 '부부'가 됐다. 두 사람의 소란하지 않은 다정함과 담백한 미소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이 한 덩어리가 아닌, 차곡차곡 공들여 쌓은 겹겹의 층이라는 게 느껴진다. 지난 6월 9일 오후 인터뷰를 위해 만난 두 사람의 눈빛에는 서두르거나 욕심내지 않고, 매 순간의 서로를 소중히 바라봐주려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두 사람이 지리산에 온 이야기부터 들어야겠다.

꿈에 그린 사람

2015년, 승현은 시골 민박 관련 스타트업에서 청년들을 모아 시골을 여행하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번외 프로그램으로 경기 수원 화성 밤 산책을 하던 날, 참가자로 온 버들을 처음 만났다. 버들은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승현 회사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알게 됐는데, 저랑 감성이 잘 맞는 거예요. 그런데 저희 집은 외박이 안 돼서 참여를 못 했어요. 그러다 한 번은 밤 산책을 한다길래 참여했는데, 진행자이던 승현이 너무 화사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때 수원 화성의 노을이 비치면서 '웃는 게 되게 예쁘다' 생각했어요. 그 후에 부모님께 우겨서 하동 1박 2일 프로그램까지 간 거예요." (버들)

하동에서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졌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얘기할수록 닮은 부분이 많았다. 버들은 나름대로 승현에게 계속 신호를 보냈다. '너 마음에 든다구! 어서 고백해!'

"그때는 인생의 힘든 순간들을 막 지나올 때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연애해도 될지 확신이 너무 없었어요. 고민하던 중에 어느 날 꿈에 버들이 나온 거죠. 버들이랑 언덕에서 손잡고 놀았어요. 그래서 '아 이런 꿈을 꿀 정도면 그냥 만나야겠다'라는 확신이 들었죠." (승현)

경기 수원 광교 호수공원에서 승현의 고백으로 두 사람의 연애가 시작됐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도시에서 각자 막막함과 불안을 느끼던 두 사람은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공통된 바람을 발견했다. 번아웃 상태였던 승현은 반복되는 과로와 회의감 속에서, 시골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여유 있는 삶을 떠올렸다. 버들은 동물권에서 채식으로, 채식에서 농사로 점점 관심이 넓어졌고, 자연스럽게 시골로 마음이 기울었다. 막연했던 두 사람의 바람은 함께하면서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일하면서 상품처럼 꾸며진 시골을 팔아야 하는 느낌인 거예요. 내가 겪은 건 그게 아닌데... 그런 것도 있고, 스타트업이다 보니까 일이 되게 힘들었죠. 월급도 적고, 야근은 야근대로 하고요. 반복되는 과로에 너무 지쳤었고 이래서 안 되겠다 싶었어요. 출근할 때마다 지하철에 꽉꽉 껴서 타면, 진짜 회의가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대비되는 두 모습을 보면서 '시골이 나한테 더 잘 맞을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승현)

회사 대표는 사기를 북돋으려 수시로 "5년 뒤의 너를 상상해 봐라"고 했다. 승현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이대로 5년이면 자신이 갈려 나갈 것만 같았다. 마침 회사의 방향이 전환되는 시기였고, 승현은 열정을 쏟았던 첫 직장을 나왔다.

승현은 양평의 한 펜션에서 숙식하며 매니저로 일했다. 그 후엔 하동에 인연이 닿아 6개월간 살기도 했다. 감사한 인연들에 기대어 시골살이를 경험할 수 있었지만, 자립과 정착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다 몸을 다치면서 고향 부산에 잠시 머물렀다. 버들은 버들대로 시골로 흘러들고 있었다. 농부 시장 마르쉐에서 만난 농부를 통해 더욱 시골과 농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맨발로 논에 들어간 그 촉감도 좋고, 사람들이 모여서 다 같이 얼마나 자연을 좋아하는지 예찬하는 시간도 너무 귀엽고, 그 농부님들이 사는 모습들도 보기 좋은 거예요. 그때 제가 멋있는 사람을 처음 봤던 것 같아요." (버들)

지리산으로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