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 마지막 날, 아이들에게 '나는봄'을 다시 열겠다고 약속했어요. 위기여성청소년들에게 문턱이 가장 낮은 곳이라서 차마 문 닫게 둘 수 없었죠." - 이가희 사회복지사
"병원에서 사는 곳을 밝히면 부모에게 소식이 닿을까 두려워하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많이 찾아왔죠. 앞으로도 익명 진료를 유지할 거예요." - 이영희 산부인과 전문의
서울시(오세훈 시장)가 없앤 전국 최초이자 유일했던 시립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이 시민들의 힘으로 다시 돌아온다. 시민 118명의 모금에 힘입어 진료기구까지 완비한 나는봄은 오는 18일 센터 개소를 앞두고 직원들의 부푼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이가희 사회복지사(41)와 이영희 산부인과 전문의(57)는 "시민들의 선의 덕분에 새로 센터를 열게 됐다"면서 "위기청소년들의 특수성을 고려한 공공 의료 서비스가 부족한 상황에 시민들이 먼저 나는봄의 필요성을 알아봤다"라고 전했다.
이들은 지난 15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에 있는 '여성청소년건강지원단' 나는봄의 새 보금자리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기존 센터가 졸속으로 문을 닫으면서 '이제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아이들의 말에 다시 운영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라고 설명했다.
나는봄은 성매매, 성폭력, 원치 않은 임신 등 위험한 환경에 처한 여성 청소년들을 위해 여성의학과, 치과, 정신의학과, 한의학과 등 무료 진료부터 심리지원, 생활물품 후원, 식당 운영까지 폭넓은 지원을 제공했다. 2013년 9월 설립 이후 2000여 명 이상의 위기여성청소년들을 구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지난 5월 "온라인 상담, 긴급 구조 등을 담은 신규 센터를 내년 1월 설치할 계획"이라고 통보한 후 두 달 만에 센터 운영을 종료했다.
센터 종사자였던 두 사람은 합심해 센터 부지부터 운영자금, 의료장비까지 하나씩 마련했다. 공공에서 민간으로, 건강센터에서 건강지원단으로 이름과 역할은 바뀌었지만, 위기여성청소년들에게 즉각적인 익명 진료를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목표는 변함없다.
이들은 "청소년 복지시설은 편의에 따라 존폐가 갈릴 것이 아닌 기성세대와 사회가 보장해야 하는 최소한의 가치"라면서 "위기청소년이 의료취약계층에 포함된다는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고 소위 말하는 '모범생' 청소년이 아니라면 혜택과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는봄이 성공적인 민간 청소년 복지 사례로 정착해 위기청소년들에 대한 지원 범주를 넓혔으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아래 두 사람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서울시의 졸속 폐지, 다른 곳 반복될까 염려"- 민간에서 나는봄과 같은 무료지원센터를 세우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이가희 : "갑작스럽게 운영이 종료되면서 기존 이용자들에게 걱정 섞인 연락이 왔다. (서울시가) 새 센터를 내년 1월에 세울 것이라고 했지만 아직 설립 계획도 확정되지 않았고, 그때까지 생기는 의료 공백의 시간이 적지 않다고 판단했다. 특히 서울시의 일방적인 폐쇄 명령을 지켜볼 수 없었다. 이러한 선례를 방치하면 서울시의 복지시설 졸속 폐지가 반복될 까 염려됐다.
다급히 센터를 여느라 기본을 갖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시민 118명의 후원과 개인 돈을 합쳐 초음파 기계와 진료대를 마련했고 기쁨나눔재단에서 공간을 무료 제공해 진료소를 마련했다. 후원금 정산 과정을 사단법인 나눔씨가 도왔고 의료기구 장만에 녹색병원이 힘을 보탰다. 센터 아이들에게 줄곧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했는데 마침내 센터까지 홀로 설 줄 알게 되어 기쁘다. 모두 센터 폐쇄 과정에서 보내준 아이들의 응원 덕분이다."
이영희 : "가정폭력을 겪은 아이들은 아무리 병원 문턱이 낮아도 쉽게 가지 못한다. 치료를 받으려면 집 주소나 이름, 나이 등 개인정보를 공개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이 현재 어디 있는지 (가해 부모에) 들킬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봄은 익명 진료가 가능해서 그런 아이들이 많이 찾아왔다. 특히 아이들이 병원 방문을 피할 때마다 센터 직원들이 계속 문자나 전화로 접촉을 시도하며 마음의 문을 열게 했다. 그렇게 편하고 안전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센터를 계속 살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 나는봄 폐쇄 후 두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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