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엘리트의 권력 사유화 욕심 보여준 결정적 두 장면

100년 전, 유럽은 문명 전체가 종말로 치닫는 듯한 '세기말적 위기'의 정서에 휩싸여 있었다. 반면, 오늘날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위기는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붕괴, 곧 '체제말적 위기'다. 제도가 더 이상 자가 재생 능력을 가지지 못한 채 기반이 침식되고, 민주주의의 존속 자체가 위협 받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양상은 민주주의 체제의 구조적 피로다. 극우의 부상, 권위주의의 부활, 시민 주체의 탈정치화, 권력분립 원칙의 왜곡으로 인해 선거·입헌주의·삼권분립·공론장 같은 민주주의의 근간 장치들이 권력의 순환과 제한, 갈등의 제도화, 시민 대표성 확보라는 본래 기능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

사법 권력의 특권화

IE003524731_STD.jpg

프랑스 정치학자 클로드 르포르는 민주주의를 '권력의 공석'을 인정하는 체제로 보았다. 권력이 특정 집단에 고정되지 않고 경쟁과 교체 속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집단은 '제도적 독립성'을 내세워 권력을 폐쇄된 영역에 고정시키며 민주주의의 개방성과 상호 견제를 무력화하고 있다.

'독립성'이라는 명분 아래 제도적 예외를 부여받은 권력 집단은 이를 방패 삼아 공적 책임을 회피하고 자기 영역을 성역화한다. 이 순간 권력의 특권화는 더욱 견고해진다. 이들은 민주주의에 내재된 절차와 긴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민중의 선택을 중우적 현상으로 경시하는 우월적 시선을 갖는다.

그들에게 권위는 대중의 승인이나 선택이 아닌, 지명과 내부의 인정에서 성립된다. 비판이나 설득에는 응답하지 않고 자격을 앞세우며, 스스로를 대중정치의 소란과 분리된 존재로 간주한다. 경쟁이나 선출보다는 닫힌 세계의 평가와 자격으로 권위를 계승하려는 이들은 민주주의 내부에서 그 원리를 잠식하는 집단이다.

오늘날의 많은 국가에서 사법부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내부 집단의 대표적 사례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을 대중정치의 바깥에 있는 존재로 상정하며, 국민의 위임이나 선출과 무관한 권위를 주장한다.

그 정당화의 논리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권력의 독립성'이다. 이 '독립'은 민중(demos)이 지배(kratos)하는, 즉 민주주의 정치구조로부터 자신들을 분리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삼권분립은, 자신들의 결정권과 접근불가능한 권위 영역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질된 채 본래의 사상에서 심각하게 이탈해 있다.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강조한 삼권분립의 목적은 권력의 일방적 행사를 막는 '상호 견제'였다. 그는 "권력이 권력을 제어하게 하라"는 원칙으로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려 했다. 요컨대 삼권분립은 권력 사유화를 막기 위한 공동 통제의 수단이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