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검사에 대한 믿음을 시험에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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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재심은 단순한 법적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자행한 폭력과 불법을 인정하고, 억울하게 낙인찍힌 사람들에게 뒤늦은 정의를 돌려주는 과정이다. 고문으로 쥐어짜낸 자백, 영장 없는 체포, 불법 구금과 조작된 증거는 1970~80년대 수많은 사람들을 간첩으로 만들었다. 그 피해는 개인을 넘어 가족과 공동체 전체를 파괴했다. 그리고 지금, 재심은 그 긴 어둠의 시간을 되짚으며 뒤늦은 정의를 선언하고 있다.

임은정 검사는 그 과정에서 이름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검찰 조직 안에서 과거사 사건을 '진심으로' 대했던 몇 안 되는 검사였다. 2012년 윤길중 전 진보당 간사의 재심에서 임 검사는 무죄를 구형했다. 당시 검찰 내부 방침은 '백지 구형', 즉 구형 의견을 내지 않고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방식이었다. 이는 책임을 회피하는 편법에 불과했다. 하지만 임 검사는 이를 거부했다(경향신문, 2017년 9월 29일). 같은 해 민청학련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고 박형규 목사의 재심에서도 그는 무죄를 구형했다. 결국 돌아온 것은 정직 4개월의 중징계였다.

그는 징계에 불복했고,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행정법원과 고등법원은 모두 징계 취소 판결을 내렸다(법률신문, 2011년 9월 28일). 그러나 조직 내부에서 그는 고립됐고, 언론을 통해서만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는 "무죄라서 무죄를 구형했을 뿐인데 비난받았다"는 발언으로 잘 알려졌다(한겨레, 2019년 11월 25일). 또한 2019년 <시사인> 인터뷰에서는 "재심 사건은 단순한 형사 절차가 아니라, 국가폭력에 대한 사과와 인정의 의미가 있다"라고 강조했다(시사인, 2019년 9월 9일).

이러한 태도 때문에 임 검사는 '검찰 내부의 양심'으로 불렸다. 과거사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그는 누구보다 진심이었고, 피해자와 유족들은 그를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검사로 기억했다. 그랬던 임 검사는 동부지검의 검사장으로 돌아왔다.

과거사 반성하는지 의심

그런데 최근 강을성 사건을 둘러싼 상황으로 이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강을성은 1970년대 군사정권 시절, 간첩 혐의로 구속돼 군사재판을 받은 인물이다. 당시 그는 영장도 없이 연행됐고, 장기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고문을 당했다. 판결의 핵심 근거는 고문에 의해 강제로 작성된 자백 조서였고, 다른 물적 증거는 사실상 없었다.

강을성과 함께 사건에 연루됐던 진두현, 박기래, 김태열 등은 이미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태열씨는 1982년 사형이 집행된 뒤 43년 만인 2025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확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불법 구금과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은 증거 능력이 없다"라며 국가폭력을 지적했다(조선일보, 2025년 8월 28일). 박기래씨도 2023년 12월 13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상고를 포기했고 무죄가 확정됐다(한겨레, 2023년 12월 13일).

언론은 이들의 무죄 판결 이유가 공통적으로 불법 수사와 증거 부족, 허위 자백이라는 점을 강조했다(한국경제, 2025년 9월 5일). 재판부 역시 판결문에서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와 위로의 뜻을 밝혔다. 이 무죄 판결들은 단지 개인의 명예 회복에 그치지 않고, 과거 국가 폭력의 실체를 인정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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