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보가 동의 없이 기업 연구에 쓰이는데 막을 방법 없다

나의 정보가 동의 없이 기업의 연구에 사용된다면 어떨까요? 2020년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으로 가명처리만 하면 정보주체인 우리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과학적 연구나 통계작성에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업의 사익을 위한 연구도 '과학적 연구'에 포함됐죠. 내 정보가 마구잡이로 활용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동의 없는 활용의 전제인 '가명처리' 단계에서 처리 정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SKT는 처리정지 요구를 거부했고,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정보주체의 '처리정지권'을 보장하라며 소송을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정보주체의 손을 들어주며, 처리정지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데이터 신산업 육성'을 이유로 들며, 정보주체의 기본권을 봉쇄하는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습니다. 11월 7일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둔 지금, 정보주체의 권리를 위한 정의로운 판결을 요구하며 오병일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대표가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

대법원 마용주(재판관), 서경환(주심), 노태악, 신숙희 대법관 2025.7.18. 선고 2024다210554

정보주체에게 '처리정지권'이 중요한 이유

2020년에 개인정보 보호법은 크게 개정되었다. 개인정보 감독기구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중앙행정기관으로 격상함으로써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동시에, 과학적 연구, 통계작성 등의 목적으로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가명처리된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그러나 개정법은 빅데이터 산업 육성을 위해 개인정보 보호 수준을 지나치게 완화한 것으로 비판받았다. 첫째, 개정법은 과학적 연구를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는 연구'로 정의함으로써, 신상품 개발을 위한 기업의 연구를 포함하여 연구라고 주장하는 모든 연구로 동의 없는 활용 범위를 확대했다.

둘째, 유럽연합의 경우 과학적 연구 목적으로 활용할 경우에도 가능할 경우 정보주체의 권리를 보장하도록 했지만, 개정법은 정보주체의 권리(예를 들어, 수집출처 등 고지받을 권리, 개인정보 파기, 개인정보 유출통지, 열람권, 정정·삭제에 관한 권리, 처리정지 요구권 등)를 아예 제한하였다.

그런데 정보주체인 이용자는 아무리 과학적 연구 목적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개인정보가 자신의 가치관에 위배되는 방식으로 활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개인정보가 시민과 노동자를 감시하거나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는 기술 개발에 활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고, 또는 가명정보가 제3자에게 제공되어 남용될 가능성을 우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행 개인정보 보호법은 개인정보 처리자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하여 과학적 연구 목적으로 활용하고자 할 경우, 정보주체가 이에 대해 동의할지 여부를 선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명정보에 대해서는 자신의 개인정보를 처리하지 말아 달라고 거부할 권리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전에' 자신의 개인정보를 과학적 연구 목적 활용을 위해 가명처리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는 것뿐이다. 개인정보 보호법 제37조는 정보주체가 개인정보처리자에 대하여 자신의 개인정보 처리의 정지를 요구할 권리(처리정지권)를 보장하고 있다.

SKT에 대한 처리정지권 소송의 경과

2020년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 이후, 과학적 연구를 명분으로 한 개인정보의 목적 외 활용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통신 3사에 대해 자신의 개인정보를 과학적 연구 목적으로 가명처리하는 것에 대한 처리정지를 청구하였다.

그러나 통신 3사 모두 이 요구를 거부했으며, 이에 KT에 대해서는 분쟁조정 신청을, LGU+에 대해서는 개인정보 침해신고를, SKT에 대해서는 처리정지이행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개인정보 분쟁조정위원회는 개인정보의 가명처리 정지를 이행하도록 조정하였고, KT는 이 조정안을 수락하였다. 그러나 LGU+의 경우에는 활동가들의 개인정보 침해신고를 접수한 개인정보 침해신고센터가 정보주체의 권리를 제대로 구제하지 못하는 엉뚱한 답변을 했기 때문에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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