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데 왜 가난할까" 그가 찾은 답

한 번 들으면 좀처럼 잊기 힘든 이름이다. 군자. 덕과 학식이 높고 어진 사람을 뜻하는 낱말, 군자(君子)와 한자어도 같다. 거기에 성씨인 '공'까지 붙으니 중국의 사상가도 떠오른다. 아버지가 동네 이장과 막걸리 한 잔 걸치다가 지은 이름이라는데 막내딸이 학자가 되길 원하셨을까?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님께 답을 들을 수 없지만 공군자씨는 '교육'이 익숙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스스로를 '교육조직 활동가'로 소개한다.

그가 교육하는 주제는 주로 노동과 인권, 이제는 사회복지까지 다룬다. 학교에선 인기 없지만 온전한 사회가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중시해야 할 분야가 아닐까. 사회도 그 중요성을 아는지 그가 만나는 교육 대상자도 10대 청소년부터 노년에 이른 선배 시민까지 폭이 넓어졌다. 지난 9월 27일 서울 영등포 모처에서 공군자씨를 만났다.

그가 전하는 인권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우선 50대 후반에 접어든 그의 인생 이야기부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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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에 학교를 갔는데 다른 애들보다 늦게 갔어요."

이게 무슨 말인가. 1, 2월 생은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군자씨의 어머니 아버지는 또래보다 작은 늦둥이를 학교에 일찍 보낼 생각이 없었다. 군자씨는 부모님과 생각이 또 달랐다. 동네 언니 오빠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고 싶어서 부모님 머리맡에 앉아 밤새 떼를 썼다. 학교에 보내달라고. 태어나서 줄곧 순둥순둥 하던 아이가 고집을 피우니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결국 백기를 든 부모님은 다음날 논에 나가는 대신 그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다.

"아이가 학교에 너무 다니고 싶어 해서 데려왔다"는 말에 한 선생님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네 이름 한 번 써봐라." 일곱 살 군자는 한글로도 쓰고 한자로도 이름을 썼다. 덧셈과 뺄셈도 할 수 있다고 하자 입학 허가가 떨어졌다. 이미 학기가 시작된 지 일주일이 넘은 시점이었다. 그렇게 뒤늦게 입학한 신입생이 되었다. 똘망똘망해 보이는 군자가 마음에 들었는지 담임 선생님은 바로 반장을 맡기셨다. 그 뒤 새 학년이 될 때마다 군자는 매년 반장에 뽑혔다.

"시골마을이기도 하고 공부도 곧잘 했으니까요. 친구들과도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고요. 말썽쟁이들도 내 말은 들었어요."

교무실에 돈다발을 싸들고 온, 치맛바람이 드센 학부형의 아이와 맞붙은 6학년 때도 학우들은 군자를 반장과 학생회장으로 뽑았다. 당선되긴 했지만 투표 결과를 상대에게 유리하게 처리하려던 교사를 보면서 군자는 결심했다. '나는 저런 선생님은 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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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부조리함을 처음 본 그때, 군자의 꿈도 확고해졌다. 선생님이 되겠다고. 그러기 위해선 고향인 전남 장성군을 벗어나야 할 것 같았다. 부모님께 "나 광주로 학교 갈래요"라고 말했다. 남의 땅에 농사짓던, 가난한 농사꾼 집안에선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부모님은 그의 뜻을 따라주었다.

"혼자서 처음 자취를 한 거잖아요. 그거 적응하기도 바빴어요. 새벽 같이 일어나서 도시락 두 개 싸서 학교 가고, 밤에 집에 오면 찬물에 손빨래하고 연탄불 갈고."

어린 나이에 홀로 일상을 꾸려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고교 시절이었다. 9년 동안 빠짐없이 맡았던 반장직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아등바등 공부하며 자취생활을 이어갔다. 교사라는 꿈을 향해서. '내 인생에 대한 결정은 내가 한다.' 마음먹은 건 해내던 그는 대학 입시를 앞두고 인생에서 첫 번째 좌절을 맛본다. "서울로 대학 갈래요"라고 했지만 이번엔 부모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집에 빚이 많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군자씨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뇌염모기에 물렸던 막내 오빠가 수년째 투병 중이었다. 그 치료비를 대느라 부모님은 밤낮 없이 일했지만 빚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 탓에 첫째, 둘째 오빠는 대학은 엄두도 못 내고 일찌감치 돈벌이에 나선 터였다. 군자씨는 할 수 없이 서울행을 포기하고 전남대학교 수학과로 진학했다. 교직 이수를 염두에 둔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는 인생은 흔치 않듯 그의 인생 역시 그러했다.

'왜 우리집은 늘 가난할까?' 의문에 답을 찾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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