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9일 오후, '윤 어게인'을 자칭하는 중학교 1학년 A가 은평구 청소년들이 만드는 독립언론 <토끼풀>의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DM(쪽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는 '12.3 계엄이 왜 내란인지 설명 가능하냐' '내란이 아닌데, (내란이라고 주장하는) 토끼풀은 가짜뉴스니까 학교에서 막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고 시비 아닌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황보현님의 시민기고 글을 보여주면서 "계엄이 헌정 유린이라는데, (토끼풀이) 그 의견에 동의해서 글을 올려준 것 아닌가요"라고도 했습니다.
저는 "황보현님 개인의 생각인 거지, 토끼풀의 공식 입장은 아닙니다"라면서 "개인적으로는 내란이라고 생각하지만, 토끼풀은 이 사안에 '내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계엄이 왜 내란인지부터 토론해달라"고 하더군요. DM으로 대화하면 말이 통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론'을 요청하고, 10분 정도 대화를 나눈 뒤 본인이 밀리는 것 같으면 잠수를 타는 경우가 '애국보수' 사이에서 꽤나 자주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나서 대화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가 "밥이나 한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A는 은평구의 한 쇼핑몰 쪽이 좋겠다며 수락했습니다.
일단 '윤 어게인' 사상을 가진 청소년을 직접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지난해 이후 상당히 많은 극우 청소년들을 만났고, 인터넷으로도 조우했는데, 그 중에 실제로 만나서 심도 있게 이야기한 친구는 없습니다.
보통 레퍼토리는 이렇습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먼저 상대 쪽에서 시비를 걸어옵니다. <토끼풀>이 '좌파 언론'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겠죠. "계엄이 왜 내란이냐" "왜 이재명을 지지하냐"며 토론을 요구합니다. 몇 차례 대화가 오간 뒤 저는 "온라인은 한계가 있으니까 만나서 이야기하자"라고 제안하거나, "본인 주변에 그런 친구가 많은 것 같은데, 단톡방을 만들어 함께 토론해보자"라고 합니다.
만나는 건 꺼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이야기하는 경우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비슷한 사상을 가진 친구 두세 명을 불러오더니, 저희 쪽에서 합리적 논리를 내세우면 한 명씩 줄행랑을 칩니다.
저희 인스타그램 계정에 몰려와 "좌파 신문 꺼져라" "518"등의 댓글을 단 사람들에게도 "비판 의견을 환영한다. <토끼풀>이 좌파신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글로 써 봐라. 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원고료도 준다고 했는데도, 그러한 요청을 보낸 3명 중 응한 사람이 없습니다.
"계엄으로 피해 본 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느냐"사족이 길었습니다. 아무튼 극우들과의 대화에 목말라있던 차에, A가 나타난 겁니다. 먼저 시비를 걸어왔지만, 솔직히 많이 반가웠습니다. '윤 어게인'과 현실에서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눌 기회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래서 11월 30일 A를 만났습니다. 저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이서찬 기자도 함께했습니다.
일단 "본인을 정치 스펙트럼상에서 어떻게 정의하는가"부터 물었습니다. '윤 어게인'이라고 했습니다. '윤 어게인' 청소년은 대체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 국민의힘인지, 자유통일당인지, 개혁신당인지도 궁금했습니다. A는 "딱히 아무 정당도 지지하는 건 아니다"라며 "그냥 윤석열이 좋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또래집단에 많은지 등 전체적인 분위기를 물었습니다. "대체로 둘 다 싫어하는 '중립'"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주로 정보를 공유하는 곳은 '인스타그램'이라고 했습니다.
A는 친구들이 꽤 많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인스타그램 단체 DM 채팅방을 슬쩍 보여줬습니다. 역시나, '이재명 때문에 나라 망했다' '중국인들이 들어오고 있다'는 식의 콘텐츠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러한 콘텐츠를 주고받는 이들을 '중립'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이미 중립의 기준선 자체가 많이 치우친 것으로 보입니다.
식사 자리로 이동해 본격적인 토론에 돌입했습니다. '계엄이 왜 내란인가'로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A는 "계엄으로 피해 본 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느냐"며 "군 투입도 '질서 유지용'이었고, 조국 전 의원 등 국회의원들도 자유롭게 출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