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7분. 디자인 작업을 하며 숱하게 '되돌리기' 버튼을 누르던 박다애 디자이너의 일상에 되돌릴 수 없는 속보가 떴다. TV 화면에는 시민과 군인이 뒤엉킨 국회 풍경이 보였고 기자의 목소리는 현실감 없이 윙윙댔다. 그 순간, 그가 속한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아래 FDSC)' 업무방에는 새 대화방이 생겼다. 방 이름부터 심상치 않았다.
"#계엄뒤질래 방이 생성됐습니다."
순식간에 몇 백 개의 메시지가 쌓였다. 그러다 대화방의 한 참석자가 긴급 공지를 올렸다. 여성단체가 광장 집회를 준비 중인데 이때 사용할 피켓과 현수막 디자이너를 급하게 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되는 FDSC 회원들이 즉시 모였다. 디자인부터 실물 제작까지 속전속결이었다.
이들의 작업은 그날로 그치지 않았다. 12.3 내란 사태 후 수많은 단체들과 소통하며 작업물들을 만들었다. 1년 사이 '계엄뒤질래' 대화방은 '세상을 바꾸는 디자이너'로 바뀌었다. 아니 진화했다.
FDSC의 이름으로 광장을 누빈 여성들이 1년 만에 다시 직접 디자인한 '윤석열 퇴진' 피켓을 들었다. 탄핵광장에서 동지가 된 동갑내기 김지윤씨와 박다애씨는 뉴스를 낯설어 했던 디자이너에서 사회를 바꾸고 연대하는 시민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UN이 지정한 세계 여성폭력 추방 주간이었던 지난 11월 27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내란 후 1년 동안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들이 제작 크레딧에 개인 이름 넣지 않은 이유두 사람이 처음부터 광장의 디자이너가 된 것은 아니었다. 지윤씨는 "계엄 당일에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며 "서로 무서움을 나누며 안부를 묻는 메시지만 오갔다"고 회고했다. 다음 날, FDSC 소속 디자이너들은 다른 여성단체에 연락을 돌리며 "디자이너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냐"고 묻기 시작했다. 그렇게 FDSC는 광장으로 향하는 여성단체의 집회용품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광장의 물건을 디자인하는 일인 만큼 그 과정도 광장의 방식을 따랐다. 다애씨는 "그간 디자인 업계에서는 한 명의 스타 디자이너만 제작자로서 대표성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며 "탄핵 집회용품 디자인 과정에서는 이를 경계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피켓 문구를 내부 투표를 통해 선정했고 각 디자이너별로 역할을 분담해 하나의 디자인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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