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첩사의 눈물, 여인형의 메모...윤석열은 빠져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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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방첩사령부. 1948년 5월 조선경비대 정보처 특별조사과로 출발한 이래 군 보안과 방첩, 범죄 수사를 도맡아온,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보호'를 최고의 사명으로 하는 부대다. 그러나 역사의 굴곡마다 방첩사는 보안사, 기무사라는 이름으로 절대권력이자 공포정치의 일원으로 군림하며 '정치군인'의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그리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가장 반하는 12.3 비상계엄의 주역을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도맡으면서, 방첩사는 또 한 번 치욕의 역사를 남겼다.

법정에 증인으로 선 방첩사 군인들은 복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1월 28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의 재판에서 배정효 전 지휘협력과장(중령)은 눈물을 흘렸다.

"비상계엄이 발생한 다음 1년 동안 방첩사 부대원들이 정말로... 고통을 받고 있다. 하... 방첩사 부대원들은 이른 시일부터 여인형 사령관에게 부정선거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드렸고, 출동 명령을 받고도 포고령을 무시하거나 한강과 편의점 등을 배회하면서 비상계엄이 성사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 비상계엄을 발령한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실망스럽고 배신감을 느끼는 부대가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여인형 방첩사령관의 큰, 짙은 그늘에 가려서 방첩부대원들이 했던 정의로운 행동과 올바른 판단들이 가려지고 매도되는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깝다."

항변과 자백

유재원 전 사이버보안실장(대령)은 11월 10일 윤석열씨 재판에서 "방첩사 내부에서도 불법계엄에 저항한 세력이 있었다는 게 기록에 남겨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태주 전 정보보호단장(대령) 역시 11월 13일 "선관위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던 것은, (정성우) 1처장이 임무를 하달할 때 실장들이 전부 다 위법성과 문제점을 제기해서 법무검토를 하도록하고, 이로 인해서 최초의 '선관위 확보'라는 임무를 '이동하되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변경시킨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모두 '방첩사의 선관위 부정선거 의혹 수사는 적법하지 않다'는 얘기였다.

문제의 지시를 내린 여인형 전 사령관조차 '부정선거 의혹 수사'의 필요성을 강변하는 윤씨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방첩사는 그런 권한이 없다. 제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그거는 방첩사 업무가 아니다.

'체포조' 인식도 다르지 않았다. 김대우 전 수사단장(준장)은 11월 28일 김용현 전 장관 재판에서 계엄 당일 이재명·한동훈 등 주요인사 14명을 불러주며 출동하라는 여인형 전 사령관의 지시에 "약간 체포의 뉘앙스가 있었다"며 "합수단이 구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방첩사) 수사관들만 이동시키는 것은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절대 단독행동하지 말고 경찰과 같이 움직이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이재명 체포조'와 '한동훈 체포조'를 맡은 소령들은 "이건 아닌 것 같다"며 속도를 줄이거나 국회 인근에서 시간을 끌다가 계엄 해제 후 부대로 복귀했다.

방첩사 부대원들 스스로 선관위 확보, 주요인사 체포 등 임무에 의문을 품은 정황은 비상계엄의 불법성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들이 증언하는 '불법'은 더 있다. 정성우 전 1처장(준장 진급예정)은 7월 17일 윤씨 재판에서 "방첩사는 계엄임무수행군이 아니라 합수부(합동수사본부) 요원"이라고 말했다. 계엄임무수행군이란 계엄 선포 시 질서유지, 소요 진압 등의 임무를 담당하는 병력으로, 원칙적으로 군사경찰이 담당하지만 다른 부대도 대통령의 승인을 받으면 투입될 수 있다(관련 기사 : 새 쟁점 '계엄임무수행군'... "6.25 사변" 끌어와 방어한 윤석열 https://omn.kr/2fo6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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