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 53기가 필요하다"... 극단적 시나리오 맞습니까

IE003555960_STD.jpg

인공지능(AI)의 확산은 이제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시대적 흐름이 되었다. 챗봇, 이미지 생성, 자동 번역, 추천 알고리즘 등 AI 기반 서비스가 일상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이 기술을 떠받치는 데이터센터와 그에 따른 전력·물 사용 문제 역시 함께 확대되고 있다.

특히 대규모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탑재된 AI 데이터센터는 더 이상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전력 다소비 산업 단지'에 가까울 정도의 에너지·물 소비 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정부와 산업계는 "AI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값싼 대량 전기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원자력이 필수적"이라는 프레임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과연 사실에 기반한 것일까. 그리고 그 길은 지속가능한 선택일까.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AI와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증가를 핵심 전제로 삼았다. 그 결과로 제시된 해법은 노후 핵발전소 10기의 수명 연장, 신규 대형 핵발전소 2기 건설, 그리고 상용화 일정조차 불확실한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실제로는 여러 모듈이 결합한 단지 형태)의 도입이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 언론, 일부 전문가는 빠르게 문제를 제기했다. AI·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는 전제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으며, 이를 핵발전 확대 명분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뚜렷하다는 비판이었다. 전력 수요 예측에 사용된 수치 또한 공개적이고 검증 가능한 데이터라기보다 특정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의 시나리오에 의존한 추정치라는 점이 반복해서 드러났다. 그럼에도 정부는 논란을 비껴가며 이를 '미래 전력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정당화했다.

정권이 바뀐 지금, 이재명 정부의 접근 역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AI·반도체·데이터센터를 "미래 산업 성장축"으로 내세우지만, 전력 수요 관리는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되고 있으며 전력 수요 증가를 기정사실화한 채 공급 확충 논리만 반복되고 있다.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SMR 상용화 가능성, 신규 핵발전 도입 논의 등은 이전 정부와 거의 동일한 방향이다. 결국 AI를 앞세운 전력 수요 과장은 정권을 초월해 핵발전 확대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검증 필요한 공포 담론

IE003484485_STD.jpg

AI 및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전망의 불확실성은 매우 크다. 업계에서는 2030년까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23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 주장하지만, 이는 일부 에너지 관계자와 컨설팅 기관의 시나리오에 과도하게 의존한 수치다. 예컨대 어떤 자료에서 제시된 '데이터센터 전력 연평균 11% 증가' 전망은 입지 조건, 냉각 기술, 효율 향상, 수요 관리 전략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불확실한 수치는 마치 확정된 미래인 것처럼 확산되며 "핵발전을 지금 확대하지 않으면 국가 경쟁력이 무너진다"는 공포 담론을 조성하고 있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과장된 위협 시나리오가 아니라, 현재 얼마의 전력이 사용되고 있으며 앞으로 얼마가 필요한지에 대한 투명한 데이터와 검증 가능한 전망이다. 데이터센터의 규모, 입지, 장비 효율, 운영 방식, 가동률 등이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신뢰할 수 있는 수요 전망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현재 사용량과 실수요 분석'보다 '수십 기 원전 증설 필요'가 먼저 제기되는 것은 정책 순서가 근본적으로 뒤바뀐 것이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