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 가며 다이소 털던 우리, 이제 함께 책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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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실패를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아닙니다. 제가 바뀌었고, 제 동지들이 바뀌었어요. 남태령에서 느꼈던 바가 없었다면 똑같은 책을 읽어도 이 책모임이 유지될 수 없었을 거예요. 남태령의 정신이 무조건적인 연대인데 이 책모임도 똑같죠. 여전히 여기는 작은 광장, '작은 남태령'이에요."

이들은 그날 남태령(서울 관악·서초구, 경기 과천시 사이의 고개)에 함께 있었다. 상경길이 막힌 농민들과 연대하려던 이들은 혹한의 남태령에서 "서로를 구하기 위해 죽음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들이 함께 만든 강렬한 기억은 탄핵을 거쳐 계엄 1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서로를 단단한 인연으로 잇고 있다. 남태령 집회에서 처음 만나 책모임을 이어오고 있는 '남태령 책모임'의 이야기다.

이들은 지난해 12월에 이어 두 번째 열린 남태령 집회(지난 3월)에서 첫 인연을 맺었다. 지난 8월부터는 책모임을 만들어 격주로 월요일마다 모이고 있다. 김후주·강현서·지승미·최별·이희구·김동령·부깽(활동명)·이샤(활동명)씨는 그동안 아홉 차례에 걸쳐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커먼즈란 무엇인가>,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 <자본의 바깥> 등 4권의 책을 읽었다. 구성원 여덟 명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이지만 "광장을 이어가고 있다"는 감각을 공유 중이다.

여전히 빛이 꺼지지 않은 "작은 광장"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1일 서울 은평구 불광역 인근에서 열린 남태령 책모임의 아홉 번째 모임 현장을 <오마이뉴스>가 취재했다.

"핫팩 5개 날아오던 그날, 똑똑히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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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책모임 장소인 동령(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씨의 작업실은 수다 소리로 가득했다. 탁자 위엔 함께 점심을 먹으며 시킨 음식과 각자 집에서 가져온 간식들이 한가득 펼쳐져 있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현서씨는 "정신 없지 않냐. 우리는 늘 주둥이만 둥둥 떠 있다"라며 웃었고, 별씨도 "오늘도 책모임 끝나고 오뎅탕 먹으려고 준비해놨다. 하루종일 떠들다 자고 가려고 평소 먹는 수면약까지 미리 챙겨온 사람도 있다"고 장난스럽게 거들었다.

이날 함께 읽은 책은 <자본의 바깥>(김지음, 빈고 공저)이었다. 참가자들은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나오면 자연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옆 사람 말을 듣고 펜으로 부지런히 밑줄을 긋고 메모하면서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이렇게 서로의 생각을 덧대는 과정이 두 시간 내내 이어졌다.

희구씨는 "책 13페이지에 '금융과 투자를 모르면 당장이라도 낙오될 것 같은 불안감이 사회에 만연하다'고 나오는데 크게 와닿는다"며 "어딜 가나 주위로부터 'AI 산업에 빨리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말했다. 그가 "지인들이 투자와 자본을 공부한다고 할 때 '나도 그렇다'고 얘기한다. 방향성은 다르지만 탈자본 공부도 자본 공부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자, 주변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소리내며 웃던 후주씨도 "지구는 둥그니까 언젠가는 만나겠지"라고 재치있게 거들었다.

책모임 도중 자연스럽게 남태령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별씨는 "책에 나오는 '빈고'의 기본 정신은 환대다. 사람들은 누가 이 시대에 이렇게 환대를 베푸냐고 의심하지만 우리는 이미 남태령에서 그 환대를 경험했다"며 "그러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경쟁을 내면화한 이들에게 자본은 공포를 부추겨 이윤을 창출한다"고 말했다.

별씨가 물꼬를 트자 너도나도 남태령을 회상하며 "너무 든든하고 따뜻했다"고 공감했다. 후주씨는 "남태령에서 어떤 사람이 덜덜 떠니까 주위에서 다섯 명이 핫팩을 던졌다"며 "우리는 자본주의가 떠들던 명제들, '인간은 이기적이다. 각자 도생이다'라고 하는 것들을 남태령에서의 승리로 보기 좋게 부정했다"고 강조했다.

지하철에서 눈에 띈 '남태령 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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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달째 책모임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지난 3월 25일 2차 남태령 집회를 계기로 서로를 처음 만났다. 희구씨가 남태령으로 향하던 지하철에서 별씨를 알아보고 말을 건넨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엑스(X)'에서 집회 소식을 접한 뒤 급히 회사에 휴가를 내고 남태령으로 가던 희구씨는 단박에 별씨가 "남태령으로 향한다"는 걸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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