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관리소에선 무슨 일 있었나... 미국 예상 뛰어넘은 비굴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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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9일 오전 10시, 대법원 1호 법정에서 대법관이 판결문을 낭독했다.

원고 이○○ 외 95명, 피고 대한민국, 사건 2018다224408 손해배상(국), 상고와 부대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비용과 부대상고비용은 각자 부담한다(대법원, 2022년 9월 29일).

짧은 판결이 끝나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곧 방청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재판 참여자들은 법정을 나서자마자 원고대리인 중 한 사람인 하주희 변호사를 둘러쌌다. 하주희 변호사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큰 목소리로 승리를 자축했다. 그때야 비로소 안도와 환희의 물결이 퍼져나갔다.

2014년 6월 25일 미군 '위안부'였던 원고 122인을 대리하여 변호인단이 소장을 접수한 지 8년 3개월 만에 결국 원고가 승소한 것이다. 이 판결을 통해 법원은 권위주의 시기 한국 정부가 기지촌을 조성, 관리, 운영했고, 미군 '위안부'의 성병을 조직적이고 폭력적으로 관리했으며,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했음을 인정하고, 원고에게 배상하도록 결정했다.

그로부터 약 3년 뒤인 2025년 9월 5일 이전 소송의 원고 22인과 새로운 원고 95인, 총 117인의 미군 '위안부' 여성들이 다시금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과거 소송의 대상은 한국 정부의 불법행위였지만, 이번 소송은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미군의 불법행위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만 1966년 체결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과 1967년 제정된 주한민사법*은 미군과 군무원의 불법행위에 대해 한국 정부가 국가배상법에 따라 손해 배상하도록 규정했으므로, 이번 소송의 피고는 역시 한국 정부다. (*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아메리카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의 시행에 관한 민사특별법"이다.)

역사사회학자로서 나는 성매매라는 렌즈를 통해 한국 현대사, 특히 한국의 국가 건설 과정을 분석해 왔다. 그리고 첫 번째 소송에서 한국 정부의 책임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를 원고측변호사들에게 제공하고 법정에서 전문가 증언을 한 바 있다. 이 글에서는 미군 '위안부'에 대한 한국 정부의 성병 통제의 배후에 주한미군이 있었음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 글은 특히 박정희 정부 시기 기지촌의 조성과 1960년대 중반에 경기도 기지촌 일대에 설립된 성병관리소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성병관리소는 미군 '위안부'에 대한 조직적, 폭력적 성병관리의 핵심 장치다.

박정희 정부의 기지촌 조성

1961년 5월 16일, 마흔세 살의 박정희 소장이 일으킨 군사쿠데타로 장면 정부는 붕괴했다. 새롭게 등장한 독재자는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가를 근본적으로 재건하겠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그의 목표 중 하나는 "모든 사회 부패를 일소"하여 사회적, 도덕적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성매매를 포함한 성적 문란은 대표악으로 간주되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군정은 쿠데타가 발생한 지 불과 5개월 후에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군정은 이러한 금지정책을 엄격하게 시행하는 대신 현실과 타협하는 길을 택했다. 1962년 6월 군정은 성매매가 묵인되는 104개의 "특정지역"을 전국에 지정했다. 그중 61곳이 미군기지가 집중된 경기도에 위치했다. 다시 말해, 특정지역의 대다수는 기지촌이었고, 나머지는 한국 남성을 상대로 한 집결지였다. 군정은 같은 해 식품위생법도 제정했다. 이 법은 주로 식품 및 식당 위생에 관한 조항으로 이루어졌지만, "유흥영업종사자", 즉 "접객부"에 대한 면허, 등록, 건강진단서 발급 조항도 포함했다.

중앙 정부뿐만 아니라 경기도 지방정부도 기지촌 조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예컨대 1961년 9월 14일 자 경기도의 '유엔군 간이특수음식점 영업허가 사무취급 세부기준수립'은 "성병감염방지 및 풍기 유지 면과 주둔유엔군에 대한 위안 또는 사기앙양면을 고려하여 위안부들의 집단수용시설이 시급하다"라고 주장했다. 경기도가 어떤 형태의 "집단수용시설"을 구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군 위안소와 유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위안부'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이 문서는 막대한 예산으로 인해 해당 계획을 실행하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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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는 대신, 외출이 허가된 유엔군의 일일 추정치를 바탕으로 얼마나 많은 유흥시설이 필요한지 계산했다. 이 추정에 따르면, 매일 7555명의 군인이 술집이나 클럽을 방문할 것이고,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289개의 시설이 필요하지만, 기존 시설은 195개에 불과했다. 이 문서에서 경기도는 표면적으로 유흥시설 간의 과도한 경쟁을 제한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으나, 실제 목적은 미군 병사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신속하게 더 많은 시설을 허가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경기도는 미군 병사들을 위한 신규 시설 허가 권한을 보건사회부가 경기도에게 이관해 줄 것을 요청했고, 보건사회부는 곧바로 이 요청을 수락했다.

성병관리소는 왜 1965년부터 설립되기 시작했나?

경기도는 또한 성병에 감염된 '위안부'를 격리하기 위해 기지촌 일대에 성병관리소를 설립했다. 1965년 3월부터 5월이라는 짧은 시기 동안 양주(동두천), 파주, 포천, 고양, 의정부에 5개의 성병관리소가 설립되었고, 1968년 12월에는 평택에 하나 더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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