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 대신 연대로, 고립·정신질환 청년들과 함께 날갯짓하는 '펭귄의 날갯짓'

2003년 이후 줄곧 OECD 국가 자살률 1위를 기록해 온 한국 사회에서, 고립되거나 다양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게 붙는 '비효율적'이고 '비정상'이라는 낙인은 여전히 견고하다. 또한 집 밖에 나가기조차 어려워하고, 방 안이 쓰레기로 가득 차도 치우지 못하며, 끼니를 챙겨 먹는 것조차 버거운 청년들도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보인다는 이유로 그들을 향해 편견의 시선을 겨누는 대신, 사회가 져야 할 책임과 국가가 보장해야 할 권리는 무엇인지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현실 속에서 '쓸모없다'라고 여겨지는 존재들을 위한 공간과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단체가 있다. 바로 정신질환 및 고립·은둔 청년들과 동행하며 삶을 지탱할 힘을 함께 찾아가는 단체, '펭귄의 날갯짓'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기 위해 '펭귄의 날갯짓'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지선·이광호 활동가를 만나보았다. 인터뷰는 11월 7일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광호 : "안녕하세요. 이광호입니다. 진단명으로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저는 우울과 불안 장애를 가지고 있고, 수면 장애로 치료받는 정신 질환 경험 당사자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 활동명 글자 중 '광'은 빛 광(光)이 아니라 미칠 광(狂)을 사용하고 있어요."

지선 : "저는 지선입니다. 저는 저를 소개할 때 주로 '5년 차 경력직 정신병자', '페미니스트', '캣맘'이라고 설명하는데요. '정신병자'라는 용어를 굳이 쓰는 이유는, 퀴어들이 "그래, 우리 변태다!"라고 스스로를 '변태'로 지칭하는 것처럼, '정신병자'를 전복적으로 사용해서 우리의 언어로 가져오기 위해서예요. 그리고 '정신병자'라는 용어가 더 이상 낙인의 언어가 아니기 바라는 마음에 '정신병자'를 당사자의 언어로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펭귄의 날갯짓', 단체명이 흥미롭습니다. '펭귄의 날갯짓'을 단체 이름으로 삼은 이유, 그리고 어떻게 단체가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펭날'에 연대하는 단체들도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광호 : "펭귄은 날개가 있지만 날지 못하는 새라고 알려져 있잖아요. 그러나 사실 펭귄은 바닷속에서 헤엄을 치거나 걸어 다닐 때 날개를 굉장히 잘 활용하는 동물이에요. 정신질환이나 고립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쓸모없다'라는 인식이 있는데, 환경이 바뀌면 펭귄이 자유롭게 헤엄을 치는 것처럼 당사자들에 대한 인식도 사회의 환경이 바뀌면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쓸모없다'라는 말도 사회가 변화하면 그 의미가 바뀌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펭귄의 날갯짓'(이하 '펭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쓸모'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므로 적절한 표현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섬세한 펭귄'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시는 공동대표가 계시는데요, 그분이 먼저 자조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어요. 저는 직장을 다니다가 모임에 초기 멤버로 합류하였습니다. 그리고 2023년에 단체를 설립했어요. 현재는 6~7명 정도의 인원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선 : " '펭날' 소속 활동가들의 직업은 다양해요. 치과의사, 미술치료전공 대학원생, 사회복지 박사과정 학생 등이 함께 해요. 자신의 본업을 따로 갖고 있고 '펭날'에서 돈을 받고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광호 : " '펭날'에 연대하는 단체들을 살펴보면, 꼭 정신질환만을 주요한 의제로 다루지는 않으시는 것 같아요. 그래도 자주 연락하는 단체들은 있어요. '뜻밖의 상담소'는 저희가 종종 자문을 받고, 최근에는 고구마도 받았어요. 고구마 구워 먹으라고 오븐도 보내주시고... 또 '후견 신탁 연구센터'라는 곳도 있는데, 지금까지도 센터 소속 교수님과 활동가분들이 저희를 많이 도와주고 계십니다. 애정하는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정신장애 당사자 영역에서 오래 활동했고 지금도 누구보다 앞장서고 계신 곳입니다. 워낙 바쁘실 텐데 제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대표님과 국장님께 연락해 괴롭히고 있어서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 정신질환 관련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국가나 제도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그 구조 아래 살아가는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시선이 팽배한 현실인 것 같아요. '펭날' 활동을 하면서 구조와 제도 등, 여러 방면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점에 대해 많이 고민하실 것 같은데요. '펭날'이 하고 계시는 활동을 소개해주세요.

광호 : "'펭날' 활동 초반 시기에는 참여자들과 독서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문화·예술 활동을 많이 했었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 참여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와 '주거'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결국 "당장 일 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집을 나와야 하는데 주거를 마련할 방법이 없다"와 같은 말씀을 하시는 거죠. 그래서 저희가 외부 지원을 받거나 보건복지부 예산을 사용해서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렸던 적이 있어요. 수원 인근 카페 사장님과 참여자분들을 연결해 직접 카페에서 일을 하셨던 적도 있고요. 저희 쉼터에서 일을 하고 그에 대한 비용을 지원금으로 드리는 인턴십 프로그램도 종종 진행했습니다.

저희는 중증이나 장애등록 정신질환자분들보다는 미등록 정신질환자 분들이 더 많이 찾아오세요. 이분들은 사실상 제도 안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습니다. 있어 봐야 지자체 안에서 외래 치료 지원을 받는 정도예요. 그래서 저희는 항상 미등록 정신질환자들에게도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어요. 자해나 자살 사건 등이 발생해야지만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까요. 또 최근 '회복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요, 격주에 한 번씩 정신질환과 고립을 경험한 당사자분들을 대상으로 식재료를 직접 고르고, 사고, 가져와서 다듬고, 요리하고 청소까지 해보았어요. 대부분의 참여자분들께서는 식사를 잘 안 챙겨 드시거나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분들이라, 그러지 말고 자신을 위해 음식을 직접 해먹어보자는 취지에서 '회복밥상'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지선 : "정신질환자 당사자들이 음식을 잘 챙겨 먹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안'과 '못'이 다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고시원에 사는 경우, 주방이라는 공용공간을 사용해야 하니까 본인이 원할 때 요리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분들도 계시고요. 주거 공간이 작은 경우 마땅히 식재료를 보관할 장소가 없어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경우도 있어요. 의사들이 "식사 잘 챙겨 드세요"라고 말하지만, 모두 그럴 수 있는 환경에서 사는 건 아니잖아요. 주거환경과 먹거리 수준은 함께 가니까요. 식사를 챙기는 습관이 생기기 어려우니까 요리하는 행위가 무서워지기도 하고요.

'회복밥상'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저는 채식을 지향하고 있어서 육류를 사용하지 않고 채소 위주의 식재료를 사용했어요. 그리고 식품위생안전에 관한 특강을 진행했는데요. 참여자분들 중에서는 브리타 정수기를 왜 정기적으로 세척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시는 분도 계셨어요. 또 우울증이 심해 냉장고에 썩은 음식을 버리지 못한 채 오랜 시간 방치했던 제 경험처럼, 해야 할 것을 알지만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각자가 느끼는 감정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어요. 냉장고를 연다, 썩은 오렌지를 꺼낸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넣는다. 이 일련의 과정이 무섭다거나, 괴롭다거나 하는 감정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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