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앞에 배롱나무꽃이 흐드러졌다. 진달래의 분홍도 철쭉의 분홍도 아닌 배롱나무꽃 고유의 분홍이 화면을 가득 메우며 흔들렸다. 노래 가사처럼 ‘그대를 처음 만난 날 남모르게 그려본’ 분홍 립스틱은 ‘떨리던 마음같이 사랑스럽던’ 배롱나무꽃의 분홍빛 아니었을까. 이곳은 실감형 디지털 전시 ‘미음완보(微吟緩步), 전통정원을 거닐다’가 열리고 있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하지만 나의 정신은 어느 가을날 갔던 전남 담양군 명옥헌(鳴玉軒) 원림을 걷고 있었다. 명옥헌 가던 돌담길 풍경이 지금도 생생하다. 감나무들은 주렁주렁 매달고 있던 열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