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음(知音)은 고사하고 휴대전화에 수백 명이 있지만 전화를 걸고 싶은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대리만족으로 진정한 우정을 노래한 유안진 시인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탐독했는데. 어느 날 문득, 엉뚱하게도 시의 주제와는 정반대의 생각이 들면서 자책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대시인도 그런 우정을 얻기 힘드니까 이렇게 절실하게 시를 썼을 텐데 하물며 나야…. 만약 ‘저런 우정을 가지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생각했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나의 인간관계를 돌아보며 자책과 후회만 하고 있었을 것 같다.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를 썼던 저자가 전편에 이어 다시 한번 “삶이 이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고, 결말을 바꾸고 싶다면 생각의 힘을 그러모으자”라고 제안했다. 삶의 결말이 영화처럼 바뀌기를 바란다면, 지렛대로 바위를 움직이듯 생각의 지렛대로 삶을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부끄러움, 권태, 냄새, 무의미, 사랑과 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