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태운다는 메타포를 활용한 한시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당시 중에선 태워도 태워도 들풀처럼 다시 돋아나는 이별의 슬픔을 포착한 백거이의 시가 유명하다.(‘賦得古原草送別’) 당나라에서 활동한 최치원(崔致遠·857∼?)이 들불을 보며 떠올린 것은 백거이와는 사뭇 다른 국면이었다.시인의 시선은 활활 불타올라 번져나가는 들불에 고정돼 있다. 정벌 나가는 군대처럼 맹렬하게 진군하는 불길을 바라보며 시인은 통쾌함과 두려움의 양가적 감정을 드러낸다. 일상 생업에 지장이 생길지언정 악의 무리가 불태워짐을 통쾌하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 그 불길로 인해 선량하고 뛰어난 인재들 역시 다칠까 걱정한다. 마지막 구의 표현은 ‘서경(書經)’(夏書 胤征)에서 온 것인데, 선악을 구별하지 않고 징벌해선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들불은 세상의 부조리를 태워버리고 싶은 마음과 어쩌면 자신마저 희생양이 되어 그 불길에 함께 휩쓸릴까를 두려워하는 마음의 길항일지 모른다. 이것은 산불을 통해 권력자의 전횡 및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