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최고의 비평가 허균은 성수시화(惺叟詩話)에서 연산군이 허황되고 음란했지만 문학을 좋아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중종반정이 일어난 1506년의 어느 봄날 연산군은 자작시 두 수를 내려주며 신하에게 운자(韻字)에 맞춰 화답하라는 명을 내렸다. 두 번째 수에서 읊은 봄날의 정경은 다음과 같다.시인으로서 연산군은 꽃과 나비 같은 자연 경물을 즐겨 읊었다. 시 문면(文面)에선 흐드러지게 핀 윤기 넘치는 꽃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없이 꽃떨기에 잠든 나비를 보호하려는 다정한 마음이 드러난다. 그런데 첫 번째 수에선 연산군의 또 다른 면모가 노출되어 대비된다. 신하들에게 자신의 은혜에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강요하고 명령을 어긴다면 우레 같은 노여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겁박한 것이다. 연산군은 즉위한 뒤 어머니인 폐비 윤씨가 죽은 억울한 사연을 알고 격분하여 온갖 패륜적 악행을 저질렀다. 선왕의 후궁들과 할머니 인수대비를 죽이고,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통해 수백 명의 지식인을 처형했다. 형벌의